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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기 이야기] <15> 천자총통에서 K9 자주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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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8-17 00:49:01 수정 : 2011-08-17 00: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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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국내 화포의 역사
이순신, ‘천자총통’ 거북선에 장착 왜선 격퇴

우리나라 무기체계 역사 중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화포와 화약의 사용이다.

화포의 역사는 고려 말 발명가인 최무선의 화약 제조 성공으로 시작됐다. 이어 우왕 3년(1377년)에 공식적인 화약·화기 제조 기구로 설치된 화통도감(火筒都監)은 국내 화포시대를 열었다.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화기 제조술은 대장군포, 이장군포, 삼장군포, 육화석포, 화포, 신포 등 20여종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화기 발사 전문부대로 화통방사군(火筒放射軍)이 편성되기도 했다.

전함에도 화포를 설치하는 놀라운 시도가 이뤄졌다. 화포를 장착한 고려 전함은 중화기로 무장한 전투함의 시초였다. 이 전함은 왜구를 격퇴하는 데 동원됐고 불을 뿜는 전함을 보고 왜구는 도주하기에 바빴다고 기록은 전한다.

중국의 양식을 본떠 제조되던 화포가 새롭게 탈바꿈한 것은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서다. 국가 통제 하에 화포 개조사업이 진행됐고, 규격화된 조선식 화포인 총통(銃筒)이 등장했다. 별대완구, 대완구 등의 대포보다 작은 총통은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유통식(有筒式) 화포다.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천자문에서 이름을 따 천(天)·지(地)·현(玄)·황(黃)자 총통이라 불렸다.

총통 가운데 천자총통이 가장 컸다. 충무공 이순신이 거북선 등 전함에 배치해 왜선에 타격을 준 것도 바로 천자총통이다. 포탄은 화전(火箭·불화살)처럼 날아가는 대장군전(大將軍箭)으로 그 무게가 30㎏에 달했으며, 사거리는 1200보(960m)였다.

지자총통은 그 생김새가 천자총통과 비슷하나 크기가 다소 작았다.

현자총통은 차대전(次大箭)이라는 화살 끝에 화약 주머니를 매달아 쏘던 작은 대포로,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 용머리 입구에 장착해 적선을 향해 철환(鐵丸)을 발사하는 용도로 썼다. 사거리가 최대 1500보에 달했다. 총통 표면에는 7개의 띠마디가 있고, 셋째 마디와 넷째 마디 사이에 반달모양의 손잡이가 있다. 황자총통은 화약을 이용해 대형화살인 피령전(皮翎箭)을 쏘는 용도로 사용됐으며, 총통 중 크기가 가장 작아 이동이 편리하다는 장점을 지녔다.

서양 화포와 같은 구조와 모양으로 제조된 근대식 화포는 조선 말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고종 11년(1874)에 대원군의 군비강화책에 힘입어 제작된 국산 주조화포인 소포와 중포가 바로 그것이다.

관련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실물은 전해진다. 청동제인 소포와 중포는 포신 주조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포차 위에 설치해 기동력을 보유했고 포신을 상하로 움직여 사거리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 조선은 국내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외국의 개방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1866년 천주교도 탄압을 명분으로 내건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병인양요와 1871년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 함대가 일으킨 신미양요를 통해 조선은 서양 군대와 조우하게 된다. 이어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수군을 공격한 사건을 계기로 조선은 문호를 개방했다. 신기술로 현대화된 서양 화포의 공격에 조선의 화포가 고개를 떨군 것이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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