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racing a recent invitation by the Castro brothers, Jimmy Carter visited Cuba last week. “We greeted each other as old friends,” gushed the former president after his meeting with Fidel Castro. “In 2002, we received him warmly,” Fidel reciprocated. “Now, I reiterated to him our respect and esteem.”
In Cuba, Mr. Carter also took time to visit and console some bereaved Cuban families. According to the “Black Book of Communism” (no tome of the vast, right-wing conspiracy, much less of the “Miami Mafia”) Mr. Carter’s Cuban hosts murdered 12,000 to 14,000 Cubans by firing squad. According to Freedom House, more than half a million Cubans have suffered in the Castros’ various gulags, dungeons and torture chambers, an incarceration rate higher than Josef Stalin’s. According to the scholars and researchers at the Cuba Archive, the Castro regime’s total death toll ― from torture, prison beatings, firing squads, machine-gunning of escapees, drownings, etc.― approaches 100,000.
So Mr. Carter would seem to have little trouble in finding bereaved Cuban families to meet. And he did meet the grieving families of some Cuban-born prisoners. But these prisoners were serving time in U.S. prisons, after being convicted by U.S. juries for espionage against the nation that elected Jimmy Carter president and for conspiracy to murder fellow citizens. These Cubans, you see, are the ones who tugged at Mr. Carter’s heartstrings.
Some background: On Sept. 14, 1998, the FBI uncovered a Castro spy ring in Miami and arrested 10 people. Five were convicted by U.S. juries (from which Cuban-Americans were scrupulously excluded) and became known as “the Cuban Five” in Castroite parlance.
According to the FBI’s affidavit, these Castro agents were engaged in, among other acts:
Gathering intelligence against the Boca Chica Air Naval Station in Key West, the McDill Air Force Base in Tampa and the headquarters of the U.S. Southern Command in Homestead, Fla.
Infiltrating the headquarters of the U.S. Southern Command. Sending letter bombs to Cuban-Americans. Spying on McDill Air Force Base, the U.S. armed forces’ worldwide headquarters for fighting “low-intensity” conflicts. Locating entry points into Florida for smuggling explosive material.
In the Castros’ fiefdom, people are sent to the firing squad and prison based on Che Guevara’s famous legal dictum: “Judicial evidence is an archaic bourgeois detail. We prosecute and execute from revolutionary conviction.”
So during an interview in Havana, Jimmy Carter saw fit to castigate “the shortcomings of the U.S. judicial system,” and hailed the Castros’ KGB-trained and U.S. convicted spies as “patriots.”
이상한 나라의 지미 카터
움베르토 폰토바(美 칼럼니스트)
지미 카터는 카스트로 형제의 최근 초청을 받아들여 지난주 쿠바를 방문했다. 전직 대통령은 피델 카스트로와 만난 뒤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인사했다”며 흥분했다. 카스트로도 응답을 했다. “우리는 2002년에 그를 따뜻하게 맞았다. 지금 나는 그에 대한 우리의 존경을 다시 표했다.”
쿠바에서 카터는 또 시간을 내서 가족을 잃은 쿠바의 몇몇 가정을 찾아가 위로했다. ‘공산당 블랙북’에 따르면 카터를 초청한 쿠바의 주최 측은 총살형으로 1만2000 내지 1만4000명의 쿠바 사람을 살해했다. 블랙북은 ‘마이애미 마피아’는 고사하고 우익 음모자들이 만든 책이 아니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쿠바인 50만명 이상이 카스트로의 굴라그(수용소군도), 지하감옥, 고문실에서 고통을 당했다. 투옥된 사람의 비율은 이오시프 스탈린보다 더 높다. 쿠바 아카이브의 학자들과 연구자들에 따르면, 카스트로 정권 하에서 자행된 고문과 교도소의 구타 및 총살형, 도망자에 대한 기관총 사격, 익사 등으로 숨진 사람의 수가 10만명에 달한다.
따라서 카터가 가족을 잃은 쿠바인 가정을 찾아내서 만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는 또 슬픔에 잠긴 몇몇 쿠바 출신 수감자의 가족들도 만났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지미 카터를 대통령에 선출한 나라를 상대로 한 간첩활동 및 동료 시민 살해 음모 혐의로 미국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보다시피 이런 쿠바인들이 카터의 심금을 울렸다.
간략한 배경 설명. 1998년 9월14일 미 연방수사국(FBI)은 마이애미에서 카스트로 스파이 조직을 적발하여 10명을 체포했다. 5명이 미국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들은 카스트로 말투를 빌린다면 ‘쿠바인 다섯’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배심원단에서 쿠바 출신 미국인은 세심하게 제외되었다.
FBI의 선서진술서에 따르면, 이 카스트로 첩자들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했다.
키웨스트의 보카치카 해군항공기지, 탬파의 맥딜 공군기지, 플로리다주 홈스테드의 남부군사령부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미 남부군사령부에 침입했다. 쿠바 출신 미국인들에게 편지폭탄을 보냈다. 맥딜 공군기지와 미군의 ‘저강도’ 분쟁 전투 담당 세계사령부의 동태를 파악했다. 폭발물 밀수를 위해 플로리다로 들어오는 진입점을 파악했다.
카스트로가 지배하는 영지에서는 주민들이 “사법적 증거는 낡은 부르주아의 세부 사항이다. 우리는 혁명의 증거로 기소하고 처형한다”는 체게바라의 유명한 법률 격언에 기초하여 총살대나 교도소로 보내진다.
따라서 지미 카터는 아바나의 면담 때 ‘미국 사법제도의 결함’을 비난하고 구소련 보안위원회(KGB)의 훈련을 받고 미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카스트로의 간첩들을 ‘애국자’라고 찬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역주=오성환 외신전문위원 suhwo@segye.com
움베르토 폰토바(美 칼럼니스트)
지미 카터는 카스트로 형제의 최근 초청을 받아들여 지난주 쿠바를 방문했다. 전직 대통령은 피델 카스트로와 만난 뒤 “우리는 오랜 친구처럼 인사했다”며 흥분했다. 카스트로도 응답을 했다. “우리는 2002년에 그를 따뜻하게 맞았다. 지금 나는 그에 대한 우리의 존경을 다시 표했다.”
쿠바에서 카터는 또 시간을 내서 가족을 잃은 쿠바의 몇몇 가정을 찾아가 위로했다. ‘공산당 블랙북’에 따르면 카터를 초청한 쿠바의 주최 측은 총살형으로 1만2000 내지 1만4000명의 쿠바 사람을 살해했다. 블랙북은 ‘마이애미 마피아’는 고사하고 우익 음모자들이 만든 책이 아니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쿠바인 50만명 이상이 카스트로의 굴라그(수용소군도), 지하감옥, 고문실에서 고통을 당했다. 투옥된 사람의 비율은 이오시프 스탈린보다 더 높다. 쿠바 아카이브의 학자들과 연구자들에 따르면, 카스트로 정권 하에서 자행된 고문과 교도소의 구타 및 총살형, 도망자에 대한 기관총 사격, 익사 등으로 숨진 사람의 수가 10만명에 달한다.
따라서 카터가 가족을 잃은 쿠바인 가정을 찾아내서 만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는 또 슬픔에 잠긴 몇몇 쿠바 출신 수감자의 가족들도 만났다. 그러나 수감자들은 지미 카터를 대통령에 선출한 나라를 상대로 한 간첩활동 및 동료 시민 살해 음모 혐의로 미국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미국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보다시피 이런 쿠바인들이 카터의 심금을 울렸다.
간략한 배경 설명. 1998년 9월14일 미 연방수사국(FBI)은 마이애미에서 카스트로 스파이 조직을 적발하여 10명을 체포했다. 5명이 미국 배심원단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고, 이들은 카스트로 말투를 빌린다면 ‘쿠바인 다섯’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배심원단에서 쿠바 출신 미국인은 세심하게 제외되었다.
FBI의 선서진술서에 따르면, 이 카스트로 첩자들은 다음과 같은 활동을 했다.
키웨스트의 보카치카 해군항공기지, 탬파의 맥딜 공군기지, 플로리다주 홈스테드의 남부군사령부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미 남부군사령부에 침입했다. 쿠바 출신 미국인들에게 편지폭탄을 보냈다. 맥딜 공군기지와 미군의 ‘저강도’ 분쟁 전투 담당 세계사령부의 동태를 파악했다. 폭발물 밀수를 위해 플로리다로 들어오는 진입점을 파악했다.
카스트로가 지배하는 영지에서는 주민들이 “사법적 증거는 낡은 부르주아의 세부 사항이다. 우리는 혁명의 증거로 기소하고 처형한다”는 체게바라의 유명한 법률 격언에 기초하여 총살대나 교도소로 보내진다.
따라서 지미 카터는 아바나의 면담 때 ‘미국 사법제도의 결함’을 비난하고 구소련 보안위원회(KGB)의 훈련을 받고 미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카스트로의 간첩들을 ‘애국자’라고 찬양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역주=오성환 외신전문위원 suhw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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