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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총회 결의 후 모두 55차례 파병
1950년 한국전 최초 대규모 군사개입
1991년 걸프전 45일 만에 이라크 항복
유엔이 국제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유엔이 최초로 대규모 군사개입에 나선 것은 1950년 6·25전쟁 때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소련 등 2개국이 기권한 가운데 모든 상임이사국의 동의를 얻어 파병을 결정, 16개국이 참전했다.

이후 미·소 냉전구도가 확립되면서 유엔이 승인한 군사작전은 한동안 뜸했다. 그러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계기로 안보리 승인 하의 군사개입이 재개됐다. 1991년 1월 미국을 중심으로 한 33개국 다국적군은 이라크군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공습을 감행했다. 이라크가 항복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받아들임으로써 45일 만에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는 안보리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미국과 영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군사작전에 착수했다. 이 때문에 유엔과 미국 관계는 한동안 냉랭했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이 대테러전의 일환으로 추진한 아프가니스탄전쟁은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받은 군사작전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단독으로 수행한 작전이어서 유엔 차원의 군사개입으로는 보기 어렵다.

유엔의 또 다른 대표적 군사개입 사례로는 보스니아전이 꼽힌다. 1992년 4월 1일부터 1995년 12월 14일까지 진행된 이 전쟁은 대량난민, 인종청소, 유엔보스니아평화유지군(UNPROFOR)과 나토군의 군사적 개입, 민간구호단체들의 개입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당시 미국은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인종청소 과정이 끝난 뒤에야 유엔 안보리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추진하는 등 군사개입에 나섰다. 결과적으로 유엔과 유럽연합이 지원한 보스니아는 독립했지만, 엄청난 인명 피해와 처참한 파괴로 ‘뒤늦은 군사개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유엔 안보리는 1998년 발칸반도에서 발생한 코소보사태 때는 비토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친세르비아 입장을 보이면서 반대해 무력개입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대신 미국과 유럽연합 주도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병력이 공습을 결행했다.

유엔 안보리와 총회 결의를 통과한 평화유지군 파병은 유엔 창립 후 지금까지 55차례가량 이뤄졌다.

원재연 기자 march2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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