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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알맹이 없는 법무부 '나영이 사건' 대책

입력 : 2009-10-01 13:20:21 수정 : 2009-10-01 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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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사회부 기자
 “가해자에 대하여 법원에서 확정된 징역형(12년)을 가석방 없이 엄격하게 집행하고, 출소한 후에도 7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철저하게 집행하라!”

 30일 취임한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이른바 ‘나영이 사건’과 관련해 내렸다는 지시 내용이다. 법무부가 배포한 보도자료엔 장관 지시사항 두 가지가 더 들어 있다. ‘나영이’와 같은 범죄 피해자에게 더 빨리, 더 많은 액수의 구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 그리고 아동 성폭행범의 양형기준을 지금보다 더 높여야 한다고 대법원에 건의하겠다는 것이다.

 ‘법무장관 지시사항’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곤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속된 말로 허접하기 그지없다. ‘나영이 사건’ 같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는 장관이 특별히 지시하지 않아도 가석방이 불가능하다. 우리 법체계가 그렇다. 마찬가지로 대법원이 전자발찌 7년 부착을 확정한 만큼 이를 차질 없이 집행하는 건 굳이 법무장관이 시켜서 될 일이 아니고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의무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 확대는 벌써 몇 년째 법무부 사업계획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검찰은 올해 7월1일 양형기준 시행 전부터 “아동 성폭행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을 법원 측에 개진해왔다. 결국 장관 지시사항 가운데 눈여겨 볼만한 신선한 내용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법무장관은 왜 이렇게 하나마나 한 소리를 ‘지시사항’이라고 포장해 언론에 공개해야 했을까? 인터넷에서 여론이 들끓고 있으니 참모진이 서둘러 대책이랍시고 마련한 게 아마 이 내용일 것이다. 법무부는 기존에 다 있는 정책을 ‘나영이 사건’ 관련 지시사항이라고 포장만 바꿔 내밀 게 아니라 좀 더 숙고하며 근본적 대책을 고민했어야 옳았다.

 법무부가 모 방송사 보도 내용대로 ‘나영이 사건’이란 용어를 쓰는 것도 납득이 가질 않는다. ‘나영이 사건’ 피해 아동의 이름은 나영이가 아니며, 이는 방송 제작진이 붙인 가명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나영이 사건’이란 표현에 나영이란 본명을 가진 어린이와 그 가족이 입을 마음의 상처는 어느 정도일까? 그냥 ‘8세 여아 성폭력 사건’이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나영이 사건’으로 공식화해가며 제2, 제3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법무부 행태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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