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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불임의 사회학] '등급' 매긴 난자매매… 죽어가는 생명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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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9-10 10:09:39 수정 : 2008-09-10 10: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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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 직거래 횡행… 올 8월까지 32명 적발
미모·학력 등에 따라 200만∼600만원에 팔려
정부 합법적 공여방안 추진… 보상금 50만원대
“불법을 저지른 것은 후회해요. 하지만 임신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난자를 구매했다가 지난달 14일 경남경찰청에 적발된 불임여성들의 하소연이다. 미국 하와이에 거주하다 난자를 구하러 한국에 들어온 남모(41)씨는 “600만원을 들여 3차례 난자를 사 배아를 만들었지만 끝내 임신에 실패했다”며 울먹였다.

경찰청에 따르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 시행 첫해인 2005년 39명이 난자매매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뒤 2년간 입건자가 한 명도 없다가 올 들어 8월 말 현재 32명이 적발됐다. 난자매매 사이트는 400∼1000명씩 회원을 거느린 채 영업 중이란 게 경찰의 분석이다.

현행법상 난자를 ‘기증’받으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돈으로 ‘거래’하면 생명윤리법 51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매매를 알선한 브로커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 오세찬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경감은 “법원은 불임부부의 딱한 사정을 참작해 집행유예 등 대개 관대한 형을 선고한다”고 전했다.

일선 경찰에 따르면 입건된 여성들은 난자매매가 불법임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의 난자로는 임신이 어렵고 딱히 난자를 기증받을 곳도 없을 때 결국 난자매매에 의존하게 된다. 뿌리깊은 부계 혈통주의, 그리고 ‘유전자야 누구 것이든 내 배를 앓고 낳으면 내 아기’라는 그릇된 인식이 불임여성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전에는 불임여성과 난자 제공자를 연결해주고 돈을 챙기는 브로커가 많았으나, 요즘은 난자를 사는 쪽과 파는 쪽의 ‘직거래’가 보통이다.

김구현 충남경찰청 경사는 “남의 자궁만 빌리는 대리모와 달리 난자매매는 남의 유전자를 통째로 받는 것인 만큼 굉장히 까다롭게 고른다”면서 “난자 제공자의 키·혈액형 등 신체조건, 졸업증명서, 건강검진기록 같은 것을 일일이 확인한 뒤 결정한다”고 말했다.

난자 가격은 제공자의 미모, 학력, 지능 등에 따라 200만원부터 6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무용 같은 예능 분야 전공자의 난자에는 거액의 ‘웃돈’이 붙는다는 게 정설이다. 경찰에 따르면 난자를 파는 여성들은 주로 ‘카드빚을 갚기 위해’ 등 경제적 이유를 댄다.


]일단 거래가 성사되면 두 여성은 미리 입을 맞추고 함께 산부인과를 찾는다. 친척이나 친구처럼 행세하며 “(난자를) 기증받기로 했다”고 하면 별 의심없이 난자 채취에 들어간다.

윤지성 마리아플러스병원 진료부장은 “둘이 와서 그냥 친한 언니·동생 사이라고 하면 믿는 수밖에 없다”며 “전에 난자매매 사건 때문에 경찰에 참고인 자격으로 불려간 적도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난자매매의 폐해를 인식한 보건복지가족부는 불임부부를 위해 난자를 제공하는 여성에게 일정한 금액을 보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생명윤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최근 입법예고했다. 불임부부가 난자를 합법적으로 공여받을 길을 열자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난자를 공여하는 여성은 교통비, 식비, 숙박비와 시술·회복에 걸리는 시간에 따른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난자 공여에 따른 적정한 보상금이 과연 얼마냐 하는 것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난자를 제공하려는 여성들이 마구 생겨나는 건 막아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보상금이 50만원이 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자발적으로 난자를 공여하겠다고 나설 여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구윤희 장스여성병원 불임클리닉 실장은 “난자의 공급과 수요 간의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지면 또다시 ‘뒷거래’가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이상혁·김태훈·양원보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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