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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on]‘개미핥기’ 이광채, 국내최초 개그마술사를 꿈꾼다!

입력 : 2008-02-26 10:55:22 수정 : 2008-02-26 10: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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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닷컴]2008년에는 ‘개미핥기’가 아닌 마술사 이광채로 팬들에게 다가선다. 이광채는 “올해는 마술에 ‘올인’할 예정이다. 당장 개그맨으로서 활동 계획은 없고, 대학로 개그 공연무대에도 나가지 않고 있다. 지금은 마술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광채는 3월 14부터 16일까지 서울 광화문 아트홀에서 화이트데이 매직콘서트 ‘도와주십SHOW’ 무대를 갖는다. 취미로서가 아닌 전문 마술가로서 첫 발을 내딛는 영광적인 순간인 동시에 시험무대다. 이광채는 현재 개그마술사로 가는 중요한 순간에 와 있다. 국내 첫 개그마술사를 위해 이광채는 오늘도, 내일도 마술만 생각한다. 마술 연습실에서 만난 이광채는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도 작은 마술도구를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 정도였다.

생소한 마술개그.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실 이광채는 마술개그로 첫 데뷔무대를 가졌다. 지난 2002년부터 취미로 마술을 시작했고, 홀로 연습 끝에 개그와 마술을 접목한 마술개그를 만들었다. 2005년 KBS ‘폭소클럽’에서 ‘마술개그’를 선보였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했기에 금세 아이디어 고갈을 경험했다. “정확히 4개월 했다. 당시에는 마술보다 개그가 강했고, 마술적인 테크닉도 부족했다. 결국 아이디어 고갈로 5주 만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6개월 정도 쉬면서 마술연습을 하며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다시 무대에 설 기회가 와서 3개월 정도 더 ‘마술개그’를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이광채가 전문적으로 마술개그를 선보이는 첫 해다. 국내 최초 개그마술사라는 타이틀도 얻고 싶다. “아직 국내에는 마술개그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개그마술사 이광채’라고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방송에서 선보였던 마술개그를 보다 업그레이드해 ‘개미핥기’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

이광채는 매직콘서트 ‘도와주십SHOW’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날 무대는 이광채에겐 개그마술사로 입지를 다지는 첫 출발선이다. 공연도 다채롭게 준비돼 있다.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마술 도구를 주문 제작해 사람 신체가 분리되고 공중 부양하는 마술 등 전문 마술사들이나 할 법한 고난이도 마술에 도전한다. 또 이번 공연의 성패는 개그마술사 이광채의 앞길을 점쳐볼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도와주십SHOW’에서 가능성이 보인다면, 올해 연말 매직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마술을 했던 것도 아니고, 취미로 마술을 시작했던 거라 부담되지만, 공연장이 300석 규모라서 부담을 좀 덜었다. 연인만을 위한 특별 이벤트도 있고, 기대만 가득 하고 오면 된다. 뻣뻣하고 딱딱한 개미핥기였지만, ‘오~저런 면이’라고 할 정도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웃으면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다.”

‘서울나들이’, ‘개미핥기’, ‘도와주십시요’

개그맨 이광채를 규정짓는 단어들이다. ‘서울나들이’에서 ‘개미핥기’로 ‘도와주십시요’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본인 스스로 생각해도 폭발력이 생각보다 거셌다. 무표정과 거지복장,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즐거워했다.

“무대 의상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제일 없어 보이고 완전 거지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당시 삶이 너무 힘들었고, 무대에서 저도 모르게 ‘도와주십시요’라고 외쳤다.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웃기지 않을 때 ‘도와주십시요’ 한마디면 다시 웃어주곤 했다. 당시 힘들었던 삶이 잘 표현됐고, 진실로 다가설 수 있었던 것 같다.”

‘개미핥기’의 인기는 그만큼 부담이다. 인기를 얻은 만큼 사람들의 기대심리는 상승했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서울 나들이’ 할 당시 거의 밤을 지새웠다. 건강 이상은 당연한 결과였고, 마음에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정신없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광채는 실제 일년 째 어금니 없이 살고 있다.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오면 나중에 전화한다고 하고선 잊어버리곤 했다. 정신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친구들은 인기가 많아져 달라졌다고 생각할 듯 싶다. 그런 점에서는 잃은 것도 조금 있다. 물론 그래도 행복하다.”(웃음)

‘개미핥기’의 인기는 다시 개그맨으로 복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쉽게 잊혀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마술과 개그의 접목은 탁월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분야는 다르지만 마술과 개그는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는 공통점과 마술에 소질이 있는 이광채에겐 욕심 가는 변화다. “5분에서 10분 정도의 공연을 위해 수많은 준비를 해야만 한다. 무대에서 반응이 올 때, 느껴지는 희열, 뿌듯함, 전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마술과 개그 이런 점에서 비슷하다”고 말했다.



개그맨 이광채는 방송인이 꿈이다. 콩트를 하기엔 연기도 못하고, MC를 할 외모는 더더욱 아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부담 없이 자기만의 매력을 발휘하고 싶을 뿐이다. 박경림이나 지상렬이 어느 프로그램에서든지 자기만의 색깔과 매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지상렬을 좋아한다. 방송 패널이나 버라이어티, 드라마 등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준다. 패널로 툭툭 던지는 말로 시청자들을 압도하는 모습이 좋다”고 밝혔다. 최근 SBS ‘라인업’에 출연했지만, 5주 만에 하차하는 아픔도 겪었다. 방송인으로 가는 첫 걸음마였고,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다. 기회가 다시 오리라는 믿음도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개그맨의 꿈을 품었다. 1997년과 98년 MBC 공채 개그맨 시험에 연이어 낙방했고, 그 후 대학졸업과 동시에 부모님 반대에 무릅쓰고 무작정 상경했다. 고시원 생활을 전전긍긍하면서 개그맨 꿈을 키웠던 이광채는 취미로 하던 마술을 개그 소재를 이용해 무대를 꾸몄다. “폭소클럽 작가 눈에 띄어 무대에 출연했고, 그 후 개그를 계속 하고 싶어서 (노예계약 사건 후) 박승대 소속사로 들어갔다.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반대했던 어머니도 내색은 안하시지만, 내심 기뻐하는 눈치다. 폭소클럽 때는 피식 웃다가, 지난해 서울나들이로 인기를 얻고 나니 ‘그 길이 맞는 것 같다’는 어머니의 인정을 받았을 때 기쁨을 말로 표현할까. “서울나들이 할 때 어머니 친구들한테 ‘당신 아들 나왔더라’라고 전화를 많이 받은 것 같다. 덕분에 어머니 어깨가 많이 올라갔고, 처음에는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맞는 것 같다고 하신다.”


/ 황성운 기자 jabongdo@segye.com 사진=박효상 객원기자 팀블로그 http://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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