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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노래를 향한 ''애모''…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입력 : 2007-09-08 13:06:00 수정 : 2007-09-08 13: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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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스타, 어떻게 지내십니까 ‘너무합니다’ ‘남행열차’ ‘애모’의 주인공. 허스키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가사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커 2003년 가수활동을 중단, 화장품 사업에 전념한 그녀가 다시 천직인 가수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든 미쳐야 합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그녀, 끝없는 열정을 내비친다.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 버린 첫 사랑도 흐르네….”
1986년에 발표된 국민 애창곡 ‘남행열차’. 언제 들어도 신나고 흥겨운 노래로 아직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때 ‘남행열차’냐, ‘완행열차’냐 노래 제목에 시비가 일 정도로 전국을 뒤흔들었던 이 노래는 가수 김수희(54)의 대표곡. 허스키하면서도 뛰어난 가창력을 앞세운 그는 ‘남행열차’뿐 아니라 ‘멍에’ ‘잃어버린 정’ ‘애모’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국민가수로 우뚝 섰다. 지난달 30일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 있는 한 피부관리실을 찾았다. 그가 원장으로 있으면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5층짜리 건물에는 피부관리실 외에 별도의 기획사 사무실을 두고 있었다.
“어제 지방행사에 갔다가 집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그러다 보니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TV에서 보아오던 모습 그대로 피부관리실에 들어선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최근 미국공연을 다녀온 뒤 쉴 틈도 없이 밀린 지방행사를 소화하느라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사는 교민들이 초청해 공연을 갔다 왔는데 더워서 혼났어요. 제가 원래 에어컨 바람을 쐬지 않는데 거기에선 기온이 43도가 넘어가니까 어쩔 수가 없더군요.”
그는 “10일 동안 미국에서 에어컨 바람만 실컷 맞고 왔다”며 “귀국 직후 코가 맹맹해지면서 목도 아프고 건강상태가 썩 좋은 편이 아니다”고 귀띔했다.
“요즘처럼 바쁠 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요.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 정신이 없어요.”
김수희는 2003년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희’라는 화장품 회사를 설립했다. 그 연장선에서 자체 개발한 제품으로 피부관리실까지 운영하며 화장품 사업에 전념해 왔다.
“지금은 동료 연예인들이 많이 찾아와요. 한번 이용해보고는 모두 흡족해하는 편이죠.”
그는 무슨 일이든 미쳐야 된다고 강조한다. 어떤 일이든 끝장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스스로 믿는다.
그가 화장품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2004년 어머니가 90세 나이로 돌아가신 후 해외여행을 다니면서부터.
“어려서부터 함께 살아온 어머니가 늘 곁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자리가 없어졌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허망하더군요.”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해에만 해외여행을 28번이나 다녀왔다. 유럽과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때마다 그는 우리나라 화장품의 우수성을 피부로 느끼고 세계시장에 내다 팔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모든 여성들이 화장품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저 같은 경우 아주 특별했어요. 남편은 습열이 많고 딸은 아토피, 아들은 건성피부라 집에서 화장품을 아예 만들어 썼으니까요.”
그는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신곡 준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바쁜 와중에 최근 완성한 11집 앨범으로 5년 만에 가요계로 복귀했다. 타이틀곡은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면서 국악적인 요소가 가미된 ‘화등’.
“남행열차, 애모 등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노래가 보통 3년 정도 지나야 반응이 오고 히트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내년쯤 승부가 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그는 “대중가요는 국민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음악적인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좋은 가사가 많이 나와야 된다”면서 신곡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남행열차 역시 프로야구단 해태타이거즈 응원가로 불리면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가사 중에 ‘만날 수 없어도 잊지는 말아요’라는 말은 무척 슬프지만, 그런 한 맺힌 노래를 흥겹게 부른 것이 히트 비결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수희는 “새 앨범을 보름전 발표했고 앞으로 본격적인 방송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며 “천직이 가수니까 좋은 노래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가요계에서 ‘여장부’로 통한다. 딱 부러지는 성격에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 경기 안양시 관양동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빌라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건강관리에도 항상 신경을 쓴다. 병이 나도 자연 치료가 될 때까지 절대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 등산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하는데, 관악산 국기봉까지 거뜬하게 오른다고 자랑이다. 8년 전에는 대형 교통사로 한쪽 팔 마비가 와 8개월간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고비를 넘긴 적도 있다.

글 추영준,
사진 황정아 기자 yjchoo@
segye.com

◇데뷔 35년차 가수 김수희는 여전한 외모와 열정을 과시한다.

가수 김수희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나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포목점을 하는 홀어머니와 살다가 중학교 때 서울로 이사왔다. 내성적인 성격에 문학작가를 꿈꾸며 여고 시절을 보냈고, 평소에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 소녀였다. 그는 졸업 후 우연히 기회가 닿아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여성 7인조 밴드 ‘블랙 캣츠’의 리드보컬로 합류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작사·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나를 두고 아리랑’과 ‘정거장’ 두 곡을 직접 만들었다.
‘나를∼ 나를∼ 나를 두고 산 넘어 가시더니/한 달∼ 두 달 해가 또 가도 편지 한 장 없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7080 가수 김훈이 구수한 목소리로 불러 세상에 널리 알렸다.
김수희는 미8군에서 팝과 리듬앤드블루스(R&B), 컨트리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넘나들며 가수 경험을 쌓았다. 그때 알게 된 가수가 심수봉이며 지금까지도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그 후 서울시내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 등에서 밴드 보컬로 활동해온 그는 1975년 남진, 윤항기·윤복희 남매 등과 함께 ‘춤추는 함대’라는 뮤지컬에 출연하면서 밴드생활을 마감하고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뮤지컬 무대에서 ‘너무합니다’를 열창한 김수희는 그때부터 노래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이듬해 가요계에 정식 입문했다. 그러나 방송 활동 중 한때 슬럼프에 빠져 가수를 포기하고 시나리오작가가 되려고 했던 적도 있다.
모 방송국 PD가 어느 유원지에서 애인과 헤어질 때 우연히 들었던 ‘너무합니다’에 반해 이 곡을 부른 주인공을 찾으면서 김수희는 뜨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멍에’ ‘남행열차’ ‘잃어버린 정’ ‘고독한 여인’ ‘지금은 가지 마세요’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내놓으며 국민가수 반열에 올라섰다. 89년에 나온 9집 앨범 타이틀곡 ‘애모’는 발표된 지 3년 만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전국을 ‘애모’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김수희는 이 노래로 방송 가요대상을 휩쓸며 최정상급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에는 10집 ‘정열의 꽃’을 발표하며 국내 처음으로 후배인 엄정화, 박미경, 여성 3인조 그룹 ‘샵 ’등이 동시 출연한 트로트음악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2005년에는 싱글앨범 ‘사랑받고 싶은 여자’를 발표했고, 최근에는 11집 앨범 타이틀곡 ‘화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제주MBC PD였던 김태식(54)씨와 결혼해 딸(27)과 아들(17) 남매를 뒀다.

추영준 기자 yjch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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