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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보도]환자 권익 나몰라라하는 임상시험심사위

관련이슈 신약 임상실험의 숨겨진 진실

입력 : 2008-01-23 22:43:00 수정 : 2008-01-23 2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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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 병원 눈치보기 급급
◇서울 종로서울대병원 내에 있는 학술행사 게시판에 임상시험 피험자 모집 광고가 가득 붙어 있다.

“피험자가 약값을 지급할 수도 있죠. 규정엔 없지만, 관례상 그렇습니다.”(부산 A종합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위원장)

부산 A 종합병원은 임상시험 피험자에게 약값을 부담시키고 있다. 동의서에는 ‘전량 무상 공급’이라고 돼 있지만, 의사는 환자에게 “1개월만 무료”라고 강조한다. 부작용이 생겨도 아무런 보상이 없다. 시험에 참여한 암 환자 C씨의 사위 박모(35)씨는 “보상도 없고 약값도 우리가 내는데, 이걸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냐”며 고민을 호소했다.

식약청의 임상시험 관리기준(GCP)에 따르면 이런 경우 해당 병원의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가 피험자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상당수 IRB는 병원과 제약사 눈치 보기에 급급해 피험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이는 국내 IRB 위원들의 윤리의식이 국제 기준에 턱없이 떨어지는 데다 소속 병원과 제약사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피험자의 안전과 권익 보호를 위해서라도 현재의 유명무실한 IRB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IRB 위원, “국제기준 몰라” 태반=식약청은 A종합병원 임상시험 사례에 대해 취재팀이 묻자 “피험자 약값 부담은 명백한 윤리 위반”이라며 “연구자가 피험자 권익을 보호하는 GCP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A 종합병원의 IRB 위원장이 GCP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병원과 연구자 입장만 앞세운 것이다. 이런 IRB 위원의 ‘무지’는 2006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지선씨 석사논문 ‘임상시험심사위원회에 대한 IRB 위원과 임상연구자의 인식도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김씨가 삼성병원 등 국내 임상시험 실시 기관 13곳의 IRB 위원과 임상연구자 16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47%(79명)가 ‘국제 GCP를 읽지 않거나 모른다’고 답했다.



◆중이 제 머리 깎을까= 전문가들은 IRB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독립성’을 꼽는다. 한림대 법학부 이인영 교수는 “임상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험자 안전”이라며 “생명윤리와 직결되는 결정을 제약사나 병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IRB는 표준운영지침상 ‘병원장 직속 위원회’인 데다 소속 위원 역시 ‘병원장이 직접 임명’하기 때문에 독립성 담보가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달 서울대병원이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의 연구비를 받아 흡연 유해성 연구를 추진한 것도 IRB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윤리적 논란 때문에 금기시되는 연구를 국립병원 IRB가 병원 수익 차원에서 별 문제의식 없이 승인해준 것이다.

◆IRB ‘소화불량’ 상태= IRB의 업무가 급증하는 것도 부실 심사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최근 5년간 임상시험 승인 건수(4상 제외)가 2004년 48건, 2005년 75건, 2006년 82건, 2007년 7월 현재 53건으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 병원의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는 “임상시험 건당 정규심의, 신속심의 등 수차례 심의를 받기 때문에 매년 700건 이상 심의하고 있다”며 “최근엔 의사들이 뒷날 문제 생길 것을 우려해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부작용까지 보고하는 바람에 업무량이 더 늘었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부 병원 IRB의 경우 이런 업무 증가에도 불구하고 위원들에게 매달 2만∼3만원의 심의 수당만 주고 있어 성실한 심의 동기 부여가 미흡한 상황이다.

◆의약품 안전관리 사각=지난해 12월 화이자는 동맥경화 치료제 톨세트라핍의 사망률 증가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화이자의 안전성심의위원회(DSMB)는 시판계획을 전면 취소됐고, 한국에서 진행 중인 임상 1건도 중단했다.

DSMB는 의약품 부작용 정보를 분석해 임상시험 중지나 내용 변경 등의 결정을 내리는 기관으로, 임상시험에서 일종의 신호등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DSMB가 한 곳도 없다. 시험약의 안전 관리가 체계적이지 않은 것이다. 서울대병원 박병주 교수는 “미국 국립보건원은 1상부터 DSMB를 의무적으로 마련토록 한다”며 “국내 임상연구에서도 이제는 독자적인 DSMB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동진·우한울·박은주·백소용 기자 specia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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