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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영화속 ''표절''의 미스터리

입력 : 2006-04-07 09:39:00 수정 : 2006-04-07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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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스토리·화면 배치까지 베끼기 기법도 ''종합 예술''
기준·법규 모호…''방과후 옥상''등 의혹만 있고 결론 없어
“국가적 망신이다.” “비슷하지만 표절은 아니다.” 최근 이효리의 ‘겟차(Get Ya)’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두 섬싱(Do Something)’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음악과 소설 등 하나의 작품을 둘러싼 표절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해외 작품을 많이 접한 네티즌들의 예리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도 표절이라는 문제에서는 안전지대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영화 음악, 화면 구성, 스토리 등 더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는 장르다.

# 표절 논란
영화에서 ‘표절 논란’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콘셉트나 소재, 스토리 진행, 화면 배치까지, ‘종합 예술’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영화에는 여러 형태의 ‘베끼기’가 있다.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가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의 콘셉트를 가져왔다는 지적은 이미 해묵은 논란이 됐다. 당시 비리 경찰과 신참의 대결 구도라는 콘셉트는 굳이 ‘베끼기’가 아니라도 가능한 설정이라는 옹호론과 한국 영화 발전이라는 애국주의 관점 등이 뒤섞여 ‘투캅스’는 3편까지 속편을 내는 흥행작으로 자기매김했다. 비슷한 콘셉트라는 이유로 표절 논란에 휩싸인 ‘중독’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요 모티브인 ‘빙의’가 일본 작품 ‘비밀’과 유사하다는 표절 논란이 일었지만, 제작사 측은 시나리오 작업이 ‘비밀’이 나오기 전에 시작됐다는 점을 들어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최근에는 ‘어린 신부’ ‘간 큰 가족’ ‘마지막 늑대’ ‘방과 후 옥상’ 등이 스토리와 콘셉트가 비슷해 ‘베꼈다’는 오명을 썼다. ‘어린신부’는 소재와 주요 에피소드가 홍콩영화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와 유사했으며, ‘마지막 늑대’는 파출소 폐쇄 위기로 경찰들이 범죄를 일으킨다는 설정이 ‘깝스’와 닮아 표절 논란에 빠졌다. ‘간 큰 가족’ 역시 어머니를 위해 희대의 거짓말을 하는 아들이라는 설정이 ‘굿바이 레닌’과 비슷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얼마 전 개봉한 ‘방과 후 옥상’은 ‘세시의 결투’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아 인터넷이 한 번 들끓었지만 불과 일주일 사이에 잠잠해졌다. 개그맨 김용은 자신의 소설 ‘죽을 때까지 한번도 못한 남자 인간 한번만’을 미국 영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가 표절했다고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주로 이야기 진행에서 문제가 제기되지만, ‘매트릭스3―레볼루션’이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표절했다는 의혹에서 볼 수 있듯이 내용이 아닌 표현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2005년 800만명을 동원한 ‘웰컴 투 동막골’은 멧돼지에게 쫓기는 장면이 일본 영화 ‘스윙 걸즈’와 비슷해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표절 의혹, 그 이후
표절 의혹이 제기되면 제작사와 감독의 대답은 비슷하다. “참고는 했다”, “영화 기획 단계에서는 원작 영화가 없었다”, “표절이 절대 아니다”라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피하고 보자는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오명을 벗기 위해 제작사가 적극 해명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표절에는 의혹만 있다”라는 말처럼, 대부분 ‘의혹’이 제기된 이후 당사자 간 합의나 법적 문제는 나오지 않는다. ‘방과 후 옥상’은 ‘세시의 결투’ 표절 의혹이 불거졌지만 개봉 4주차인 지금, 명예훼손이나 표절에 대한 합의 등 어느 것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방과 후 옥상’의 관계자는 “콘셉트가 비슷하지만 흔히 나올 수 있고, 왕따라는 설정이 ‘방과 후 옥상’의 독창성을 증명한다”며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영화 ‘체인지’는 뒤늦게 판권을 구입한 드문 경우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몸이 바뀐다는 내용의 ‘체인지’는 일본 TV드라마 ‘방과후’ 표절 의혹이 일자 원작의 판권을 구입했다. 연극 ‘키스’의 원작자는 1200만명을 동원한 영화 ‘왕의 남자’가 자기 작품의 대사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도 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개그맨 김용은 UIP코리아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지난해 제기한 영화상영 금지 가처분신청이 법원으로부터 기각됐지만 “영화사가 상영을 중단한 점 등에서 표절이 맞는다”고 맞서고 있다.



# 표절? 아닌가…
문제는 영화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상당히 모호하다는 데 있다. 스토리 진행이 유사하다거나, 소재가 흡사하다거나, 화면 배치가 비슷하다는 등 표절 유형은 많지만, 그 판단이 모호할뿐더러 2시간이 넘는 영화 속에서 1초의 장면이 유사하다고 표절이라고 매도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영화적 기법인 패러디, 오마주(존경의 뜻으로 선배 영화의 감명 깊은 주요 대사나 장면을 본떠 표현하는 행위)를 무조건 표절로 몰아갈 수는 없다.
이에 대해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코언 형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작품은 과거 영화들의 짜깁기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아무도 표절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영화는 카메라라는 장치로 매개되고, 편집이나 카메라의 움직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흡사할 수 밖에 없다”며 표현 양식에서 표절은 속단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내러티브의 유사성이 표절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때론 학생이나 아마추어 등 아직 영화계에 편입되지 못한 감독들의 작품을 기성 감독들이 표절하는 경우도 있다. 전씨는 이에 관련해 “영화 기득권이 약한 아마추어 감독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사례에 대해서도 강한 제재가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에는 표절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다만 저작권법상 ‘인용’에 대한 포괄적인 규정만 있을 뿐이다. 타인의 창작물을 원작자의 허가 없이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베낀’ 경우 명백히 저작권법상 권리를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상당히 포괄적이어서 명확한 경계선을 긋기 힘들다. 미국의 경우 ‘페어 유즈(공정 이용)’ 규정에서 이용된 저작물의 양과 이용된 성질, 도용당한 저작물의 시장 영향력 등을 고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절 여부를 가리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국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다.
표절은 통상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이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거나 법적인 절차를 거쳐 보상을 받아낼 수 있다. 그러나 저작권심의조정위의 조정은 강제력이 없는 데다가 양자 간 협의가 안 될 경우 의미가 없다. 당사자 간 합의 없이 법원으로 갈 경우 고의적인 침해는 형사책임을, 과실에 의한 침해는 민사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정진수 기자 yamyam19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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