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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영재 여섯살 송유근군의 하루

입력 : 2004-11-10 14:44:00 수정 : 2004-11-10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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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분 풀며 컴퓨터랑 놀아요” 지난 8일 오전 8시30분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과학영재’ 송유근(6)군의 집. ‘미적분을 척척 풀어낸다’는 이유로 숱하게 언론에 소개된 송군은 신문·방송 취재에 익숙할 법도 한데, 쑥스러움을 탄다. 몸을 꼬다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낯을 가려서…. 오후쯤 돼야 말문이 트여요.”
아버지 송수진(45)씨 말에 어머니 박옥선(45)씨가 “아직 애”라며 거든다.
송군의 ‘동의 없이’ 들어간 공부방. ‘아직 애’라지만 방은 ‘어린이방’이 아니다. ‘H(수소), He(헬륨), Li(리튬), Be(베릴륨)…’ 원소기호가 기록된 주기율표가 방 한쪽 벽을 차지했다. 책장에는 공학용 전문 프로그램인 듯한 알 수 없는 CD 100여장이 꽂혀 있다. 그리고 컴퓨터와 전자피아노 한 대. 여느 집 ‘어린이방’에 있을 법한 동화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주기율표, 유근이가 보는 거야? 야∼ 대단하다!” 이런저런 ‘분위기 띄우기용’ 물음에 송군은 눈을 피해 물끄러미 하늘만 쳐다본다. ‘체르니 30번’ 피아노 교재를 펴들고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 송군을 뒤로하고 거실로 물러났다.
거실은 더욱 눈길을 끈다. ‘무한적분’ ‘C++ 프로그램’ ‘이차방정식’ ‘리만 적분’ 등 아버지 송씨가 직접 스크랩한 수학과 컴퓨터 자료와 원서 20∼30권이 빼곡히 쌓여 있다. 마치 작은 ‘영재학교 교무실’을 연상케 한다.
“영재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죠.”
아버지 송씨의 말이다. 송씨는 지난해 8월 ‘아들의 교육을 위해 1년을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생업을 접었다. 지난 17년간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던 어머니 박씨도 가세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면 환갑이 훌쩍 넘는 나이가 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아이의 흡입력을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다.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올해 3월까지 미적분 과정을 마쳤다.
송씨는 수학 노트 10여권을 펼쳐 보인다. 대학노트에 삐뚤삐뚤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어설픈 글쓰기로 유근군이 풀어낸 미적분 풀이가 가득하다.

“원리를 이해하면 그리 어렵지 않아요. 유근이는 차 바퀴를 세는 데서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죠. ‘차 3대의 바퀴는 모두 12개’ 뭐 이런 식이죠. 적분도 원리를 따지고 보면 일정한 규칙으로 나열된 숫자들의 덧셈이거든요. 처음에는 한 문제 푸는 데 일주일이 걸리더니, 이제 복잡한 2차곡선그래프 적분도 2시간이면 풀어냅니다.”
그러나 올해 초 한 차례 ‘사건’은 수학 가정학습을 중단케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지난 4월 송군의 물리·수학 수업을 돕던 인하대학교 부설 과학영재교육원 박제남 교수가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라고 하자, 송군이 이를 대놓고 부정한 것. 박 교수와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어른들 반응에 놀랐는지 두 시간 동안 입을 닫고 있던 송군은 집에 와서야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한 점을 찍고, 북극에서 한 점을 찍고, 미국에서 한 점을 찍고 연결하면 삼각형이지만 내각의 합은 180도를 넘어요. π(180도)에서 3π(540도) 사이 정도예요.”
송군의 수학적 사고는 ‘유클리드 기하학’(평면 기하학)을 넘어서 3차원에 이미 도달했다.
‘삼각형 사건’이 있은 뒤 송씨는 아이를 가르치는 데 한계를 느꼈다. 주위에서도 “어설프게 집에서 가르쳐서 아이에게 혼돈을 주느니 가르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후 컴퓨터에 관심을 갖는 송군을 위해 ‘전자공학’ 쪽으로 눈을 돌렸다.
오전 10시. 송군의 전자공학 공부에 도움을 주는 인하공업전문대학교 엄우용 교수 사무실로 향하는 차 안. “컴퓨터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때의 통신법 규칙과 약속은?” “프로토콜!!”
어머니 박씨가 닳고 해진 정보기기 관련 책을 보면서 질문을 던지고, 송군이 답한다.
송군은 정보기기운영사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오는 11일 2차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이미 지난 8월 국가기술자격 시험인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따냈다. 공부 기간은 2∼3개월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정보처리기능사는 전자계산기 일반과 정보통신 일반, PC 운용체계 등과 관련된 필기시험, 프로그램 작성 등 1·2차 시험에서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한다. 송군은 2차 실기에서 100점 만점을 받았다. 성인의 합격률도 30%대인 어려운 시험이다.
이런 영재를 둔 부모는 마냥 행복할까. 인천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송씨는 운전을 하면서도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한 넋두리와 안타까움을 늘어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왜 갑자기 정보기기 관련 자격증을 따느냐고 물어봐요. 정보기기를 이해하는 것이 유근이의 앞길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 한 거예요. 그럼 이거말고 뭘 해야 하죠?”
송씨는 오히려 반문한다. 과학기술부도, 교육인적자원부도, 국내 23개 달하는 어떠한 영재교육원도, 이 질문에 시원스러운 답을 주지 못했다. 바둑 골프 야구 축구 등 연예·스포츠 부문에는 영재교육의 길이 열려 있지만 과학 영재, 특히 유근이 같은 유아들은 ‘사각’에 처해 있단다.

◇''과학영재'' 송유근 군이 지난 8일 인하공업전문대 엄우용교수 연구실에서 자신이 만든 ''자동마우스클릭기''를 만지작 거리며 살펴보고 있다.
올해 초 ‘미적분을 계산하는 여섯 살짜리’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을 때 누군가 도움을 줄 것만 같았지만 인하대 박제남 교수 외에는 전화 한 통 없었다. 송씨는 유근이가 ‘신기한 아이’ 정도로 비친 것이 안타깝다.
“서울교대 영재교육원에 보내려다 관뒀어요. 알고보니까 사설 영재학원보다 못하더라고요. 학부형들도 교육 내용보다는 과기고 입학에 가산점이 부여되는 ‘수료증’에 더 관심을 보이는 눈치였어요.”
오전 10시30분 엄 교수의 연구실. 송군은 교수님 앞에 자랑스레 자신의 ‘작품’을 꺼내든다. 마우스 잔해와 기판으로 얼기설기 만든 전자기기다. 송군에 따르면 스타크래프트를 하는데, 클릭하기가 귀찮아서 만든 ‘자동 마우스 클릭기’란다.
“2∼3초에 한 번씩 클릭되며 저항값을 바꾸면 속도가 더 빨라진다”며 알 수 없는 설명을 늘어놓는다. “야∼ 너 이거 어떻게 만든 거야.” 엄 교수의 탄성이 터진다.
송군은 지난 5월부터 엄 교수를 한 달에 한번 꼴로 방문한다. 엄 교수의 교재로 전자·논리 회로에 대한 기본을 독학하며, 막히는 곳이 생기면 아버지가 메모해 놓았다가 엄 교수에게 해결을 부탁한다.
지금 송군의 관심은 전자회로와 시스템 설계를 위한‘VHDL’ 프로그래밍에 쏠려 있다. 엄 교수는 “조금만 더 있으면 저보다 나은 사람,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해야 할 것 같다”며 “현재 유근이는 전자공학 전공 대학생 2∼3학년 수준의 이해도를 보이는 ‘공학영재’”라고 평가했다.
수학, 물리, 화학도 모자라 공학에 대한 학습능력을 보이는 송군은 그러나 ‘적’이 없다. 현재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나이지만 아토피성 피부염 등 건강상 문제로 ‘입학유예’가 된 상태다. 상태가 호전돼 지난 여름 6학년으로 월반을 시도했지만, 일단 공립학교에서는 ‘아이의 사회성 문제’ ‘다른 학부모 위화감 조성’ 등을 문제로 들며 거부했다. 송군은 내년에 중학교를 진학해야 6월 개최되는 국내 물리올림피아드 입선이라는 단기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검정고시도 고려했지만 좌절됐다. 송씨는 만 12세까지 검정고시를 볼 수 없다는 교육부의 방침에 맞서 연령 제한을 풀어 달라는 행정소송까지 냈다. 법원은 “어린이들에게 사회 적응력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취지에 따라 검정고시 연령제한 규정을 둔 것은 정당하며 12살 이전의 검정고시는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남은 곳은 사립학교. 마침 이날 오후 3시 경기도 학교법인 심석학원 심석초등학교 신한권 교장과의 면담이 있었다. 대화는 1시간가량 이어졌다. 송씨 아버지는 ‘6학년 월반→중학교 진학→물리 올림피아드 수상→양자역학 전공 교수로부터 수학→초등학교 재입학’으로 요약되는 영재교육 ‘복안’을 설명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했지만 이 방법밖에 없다고 봐요. 물리 전공 대학교수로부터 배워야 하는데, 물리 올림피아드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대학 조기입학은 아이 인성교육에 부정적일 것이고요. 교육의 장이 마련되면 제자리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런 유씨의 설명에 신 교장은 유근 군을 초등 6학년으로 ‘가입학’시킬 것을 약속했다. 정식 입학 결정은 객관적인 시험을 받은 뒤 결정할 예정이다.
유근군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신이 났다. 말이나 글로만 듣던 운동장, 학우, 교실, 칠판, 선생님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단다. 형 누나보다는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싶지만, 안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 부모님은 일단 시름을 덜었지만, 아직 여러 가지로 불안한 눈치다. 유근이의 잠재력이 이미 가정교육으로는 감당치 못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근군은 부모님을 졸라서 다니는 발레학원으로 가벼운 발길을 옮긴다. 오후 6시 발레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 벌써 어둑어둑해진다. 발레 학원과 같은 건물을 쓰는 ‘H영재학원’ ‘D영재학원’ 등 사설 영재학원들의 간판이 오늘 따라 유난히 번쩍인다.
글 우한울, 사진 이제원기자/erasmo@segye.com

■유근군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영재교육 이렇게
1. 충분히 기다려라
“아이들이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는 꼭 옵니다. 피아노 미술 태권도 발레, 이것저것 어른의 눈높이대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소화할 수 없어요. 유근이가 만 4살 때 예술의 전당 앞에서 놀다가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뭐하는지 보고 싶다’고 해서 처음으로 클래식 공연을 보여줬습니다. 아마 억지로 가르쳤으면 역효과가 났을 거예요.”
2. 조급함을 버려라
“유근이가 적분 문제를 처음 풀 때 일주일이 걸렸어요. 엄마도 아빠도 재촉하지 않았어요. 던져주고 끝까지 기다리면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힘이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사고하며 그 폭을 점차 넓혀 갑니다.”
3. 충분히 보여라
“물론 긍정적인 자극은 필요하죠. 부모들이 직접 배우면서 이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령 아빠가 수학 공부를 하면, 아이들이 관심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형성됩니다.”
4. 가르치기보다 배우게 하라
“애를 잡아 앉히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면 학습 효과가 반감됩니다. 물론 곁에서 항상 지켜봐야 하지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조로 말하면 듣지 않는 것이 아이들이죠.”
5. 하나에 집중하라
“유근이는 수학을 배우면서 영어와 국어를 동시에 배웠죠. 저희도 깜짝 놀랐습니다. 외국 원서로 가르치다 보니까 영어 문장을 익숙하게 받아들였죠. 지금 마틴 루터 킹 목사나 링컨의 연설문을 거의 외우다시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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