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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56돌]日베끼기 '위험수위' 넘었다

입력 : 2001-08-08 17:03:00 수정 : 2001-08-08 1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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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만화-광고, 日냄새 투성이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결정 등으로 한일간의 관계가 최악의 국면에 놓여 있다. 특히 우리 정부의 일본문화 추가개방 중단조치로 한-일 문화교류는 사실상 휴면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일본문화는 이미 우리 안방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다. 온가족이 둘러앉아 구경하는 국내 TV오락프로와 드라마, 광고에는 왜색(倭色)이 넘쳐난다. 특히 청소년들이 즐겨보는 국산만화는 일본만화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다.

◆방송=대학교 졸업반인 염승권(29.서울 도봉구 창동)씨는 지난해 일본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왔다. 우리 방송 프로그램들이 일본 것을 베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저 일부 특수한 케이스일 것으로 생각했던 염씨는 일본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출연하는 사람들과 언어를 빼면 일본 것인지 우리 것인지 구별할 수 없는 프로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특히 쇼-오락 프로그램이 심한 것 같았어요. 일본 것이 좀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것만 빼고요."
그는 일본에서 새롭게 선보인 프로그램이 귀국한 뒤 얼마 안 있어 우리나라에서도 버젓이 방영되는 모습도 봤다고 한다.
"99초안에 광고를 만들어야 된다는 프로그램은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하는 '100%캬인'과 1초만 빼고 똑같아요. 일본 것은 100초 안에 만들어야 하죠."
사실 우리 방송의 일본 베끼기는 하루 이틀된 문제가 아니다. 기획의도, 포맷, 진행방식뿐 아니라 연출기법과 카메라기법까지 그대로 도용한다.
최근 한국방송진흥원이 주최한 '다채널시대 방송 프로그램의 품격과 정체성'이란 주제의 토론회에선 "일본 방송을 모방하는 관행이 93년 조사 이래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자리에서 이기현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한국과 일본 방송의 프로그램 유사성 분석'이란 논문에 따르면 KBS2의 '도전 지구탐험대'는 유명인이 해외를 방문해 지역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마이니치TV의 '세계 우루룬 체재기'와 비슷하며 MBC '생방송 퀴즈가 좋다'는 후지TV '퀴즈 밀리오네'와 세트구성 및 진행방식이 흡사하다.
SBS '쇼 무한탈출'의 '학교위문단' 코너는 일본 TBS '학교에 가자'의 '엉뚱한 뮤지션들'을 모방했다는 이유로 조기종영되기도 했다.
◆만화=일본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세계 최강국인 만큼 국내에 유통되는 만화의 70% 정도는 일본만화다. 그나마 유통되는 30%의 국산만화마저도 표현양식과 장면전환 기법, 기본 줄거리, 배경처리 등이 일본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캐릭터의 생긴 모양이 유사함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고방식도 비슷하다.
일본만화 범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만화 내용이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혈이 낭자한 폭력성 짙은 만화부터, 동성애를 미화하고 심지어는 원조교재까지 부추기는 만화가 난무하고 있다. '이브가 없는 세상' '얼음요괴의 전설' 등에는 주인공들이 입을 맞추거나 포옹하는 장면이 나오고, '순정퍼피'에는 강아지에서 소녀로 변한 주인공이 중년의 신사와 '원조교재'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해적판 일본만화는 많이 사라졌지만 일본만화의 저질 선정성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방송이 일본만화를 표절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방영한 MBC의 '맛있는 청혼'에는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 났고, SBS '토마토'는 일본만화 '해피'를 표절했다고 해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다.
한 평론가는 "만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보다 멋지게 또는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잘 포장된 그림을 보면서 청소년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일본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우려한다.
◆광고=최근들어 노골적인 표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우리 광고엔 일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난 6월 한 햄버거 업체는 새 햄버거 광고를 하면서 일식집에서 일하는 일본옷을 입은 네 명의 배우를 선보였다가 논란이 되자 한달만에 광고를 내렸다.
한 제과회사의 신제품 광고에는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일본 사람들이 매운 것을 잘 못 먹으니까 매운 과자로 사무라이를 퇴치한다는 내용이다.
또 일본의 전통극인 '가부키' 연기자 같은 옷과 화장을 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화장품 광고는 최근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로부터 내용수정 요구를 받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미디어워치 김태현 간사는 "일본에서 성공한 포맷은 우리 나라에서 별다른 위험부담 없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모방 표절의 문제는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철학과 전반적인 기획력, 창의력 부재를 실감한다"고 지적했다. /이창형기자 chang@sg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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