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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帝돌담에 포위된 '국보1호'

광복 56돌을 앞두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가운데는 일제 유물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의 진실을 일제의 시각으로 보고 해석하는 표현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이같은 문제에 대해 방치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본지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는 극일(克日)의 차원에서 서울의 일제잔재 문제를 3회에 걸쳐 게재,역사를 반추하며 민족 자존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편집자 주

조선시대 도성의 정문이자 국보1호인 숭례문(崇禮門.남대문)이 왜색으로 덧칠돼 있다고 지적하면 믿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 곳에는 아직도 왜색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숭례문은 광복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일제가 쌓은 석축에 포위되어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숱한 역사의 질곡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건축미를 간직해온 숭례문은 잔혹한 일제통치를 거치면서 전례없는 수난을 겪었다. 1907년,일본 왕세자(훗날 다이쇼천왕)가 방한하자 일제는 "대일본의 왕세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날 수 없다"면서 숭례문과 연결된 서울성곽을 헐어버렸다. 이어 성곽을 헌 자리에 도로와 전차길을 내고,숭례문 둘레에 화강암으로 일본식 석축을 쌓았다. 문앞에는 파출소와 가로등을 설치했다. 문화재위원인 동국대 김동현(金東賢.64.건축사) 교수는 5일 "일제가 우리 문화재 말살정책 일환으로 성곽을 헐어 길을 내면서 차도와의 경계석으로 돌을 쌓았다"고 말했다.
파출소는 해방 얼마 후 헐렸으나 석축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일제가 쌓은 높이 1.5∼3m,길이 150m의 석축은 마치 일제의 영광을 기억이나 하란 듯이 여전히 숭례문을 감싸고 있다. 높이 1.5m 남짓한 가로등 밑동 2개도 정면에 버티고 서 있다. 70년대에 숭례문에 대한 전면보수가 이뤄졌고,97년과 99년 부분보수와 조명등 설치작업이 잇따라 실시됐지만 이러한 일제 잔재는 청산되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국보1호에까지 일제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은 우리 문화재의 수치"라고 지적했다. ㈜건축환경연구소 대표 김원(金洹.건축가)씨는 "지금의 숭례문은 일제가 만든 석축과 도로에 둘러싸여 박제된 모습을 하고 있다"면서 "도성 정문의 위상에 걸맞도록 일제 석축을 헐고 성곽 일부를 복원해 국민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연국기자 bykoog@sg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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