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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의 나라” 신한국/주섭일 유럽총국장(특파원 칼럼)

입력 : 1995-04-30 00:00:00 수정 : 1995-04-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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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극적인 한국의 가스폭발사고」 「지옥으로 돌변한 한국의 제3 도시 대구」 「한국역사상 최악의 대참사」.
28일 유럽의 언론들은 머릿기사로 「대구의 대참사」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지난해 10월 발생한 성수대교붕괴사고를 새삼 상기시켰다. 프랑스국영 TV인 「프랑스 2」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유람선이 불타며 마포가스공급소에서 폭발사 고가 발생한데 이어 이번에는 지하철공사장에서 참사가 일어났다고 해설했 다.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의 독가스테러사건이나 미국 오클라호마시티의 폭탄테러사건과는 달리 한국의 연쇄참사사건은 국제사회가 우리정부의 국 가경영관리능력을 의심하도록 만드는데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준 사례가 되 었다. 왜냐하면 지난해와 올들어 일어난 연쇄참사사건은 우리행정부가 관 리감독을 좀더 철저히 했다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였기 때문 이다.
이번 대구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건은 신한국,국제화,세계화를 소리높여 외친 정부의 구호정치가 거품정책이었고 허구였다는 사실을 드러 냈을 뿐아니라,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신청을 내고 선진국이 되겠다던 한국의 위상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독가스나 폭탄테러는 국제 사회에 테러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동정이라도 얻을 수 있으 나 한국의 인재는 웃음거리를 제공한 결과가 돼 당혹스럽고도 난감한 생 각이 든다. 유럽에서 대구참사사건이 상징하는 것은 사회가 가치관 전도 현상과 정부의 무능,그리고 공직자의 복지부동 등이다. 황금만능주의에 매몰된 한국병이 곪아 터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민정부가 「한국병」 치유에 나섰지만,조금도 개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존중되고 인간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잡은 사회에서는 「대구참사」같은 인재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 규율 문화 의식 등이 인간중심으로 구조화돼 움직여지는 까닭이다.
한 국병은 지난 30년간 군사독재가 만들어 놓은 사회악이요,민족의 암이다 . 그 시대에 총칼로 헌정을 유린해 권력을 잡은 군부세력은 「몽둥이」 로 국민을 「통치」했으며 돈으로 다스렸다. 여기에 인간주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이를 주장했던 양심세력은 사회밖으로 추방돼 소외됐 다. 행정부도 국민이야 어떻든간에 군사독재자에게 충성만 하면 훈장받고 승진하고 치부도 할 수 있는 수탈기구로 전락한다.
사회의 가치관을 전도시킨 주범은 바로 행정관료들이었다. 그들은 국민위에 군림해 공직 자의 당연한 임무임에도 시민이 돈을 주지않으면 서류를 떼어주지 않았다 . 정부와 국민간의 관계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그리고 돈먹고 돈주는 주 종관계로 전락했다. 우리는 군사독재시대의 긴터널을 벗어나 마침내 문민 정부를 출범시켰다. 모두가 한국병 치유를 기대했고 선진국 진입을 자부 했다. 문민정부가 한국병 치유를 위해 개혁작업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한 때 국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던 것 또한 사실 이다.
그러나 성수대교 붕괴사고이후 대구 참사에 이른 일련의 연쇄사 건들은 개혁정책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말았다. 다시말해 개혁은 한국병의 근원적인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아픈 부위에 약만 바른 겉핥기 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병든 한국사회의 제도 관행 금융 의식 등을 구 조적으로 변혁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외모론 멀쩡해 보이는데 속이 곪아 여기저기서 터지는 것이다.
문민정부의 개혁은 수술을 해야 하는 병에 약만 바른 이치와 똑같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총리가 긴급안전대 책을 지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가 명실상부하게 국민의 서비스 기관이 되도록 개혁하는 일이다. 민주국가에서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행정부와 국민과의 관계자체가 전도돼 있는데 사회의 가치관이 바로 설 수 없다.
성수대교붕괴사고이후 지난해말 개각에서 정부는 행정능력있 는 인사들을 대거 등용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들의 행정능력이란 무 엇인가. 군부세력에 아첨­충성하고 국민을 우습게 여기며 국민위에 군림 한 것이 전부가 아닌가. 사람이 사회의 최고가치로 자리잡고 행정부가 국민의 철저한 서비스기관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앞 으로 또 일어날 수 있다.
일부 공직자들은 그들의 이익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개혁을 근본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끝 나 그들의 전성시대가 돌아올 때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자기들이 종처럼 국민의 심부름꾼으로 봉사하는 것이 민 주시대의 기본임무임에도 수용하기를 싫어한다. 그러니 대통령이 아무리 개혁을 외쳐대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또한 공직자가 움직이지 않으니 경영은 고사하고 국가관리가 엉망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의 해법 은 행정부가 국민의 진정한 서비스기관이 되도록 제도 규율 관행 등을 개정하는데 있다. 그리고 구미선진국에서 공부한 우수한 전문가집단을 행 정부에 포진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문지식이 없는 공직자에게 위기 관리를 맡기는 것은 악순환의 원인을 제공할 뿐이다. 대구의 비극이 두 번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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