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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기법 사라지고 현대식 기교만… 1980년 이후 만든 5개 전통 제작방식 안 따라
인간문화재 ‘주철장’시방서 어기고 편의대로
청아하면서도 끊길 듯 말듯 은은하게 여음(맥놀이)이 이어지는 우리 범종의 소리.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그 소리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여 있다. 장인의 혼과 얼을 담아 전통방식으로 범종을 재현하지 않고 손쉬운 현대기법이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국새 파문’에서 보듯 전통 문화재 기술이 계승되지 못하고 복원·복구과정에서도 전통방식에 대한 검증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1980년 이후 제작된 5개의 국보·보물급 범종의 복원·복제종은 모두 현대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범종 제작부문의 인간문화재(제112호·주철장)마저 보물급 내소사·청룡사 범종의 복제종을 제작하면서 시방서 규정을 어긴 사실이 확인됐다.

24일 문화재청이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서울 중랑을)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5년 4월 보물 제479호 낙산사 동종(2005년 7월 보물 해제)이 화재로 소실되자 긴급 예산을 확보해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문화재청은 또 낙산사 화재사고를 계기로 보물급 범종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내소사 동종(보물 제277호)과 통도사 동종(〃 제11-6호), 청룡사 동종(〃 제11-4호)도 복제해 종각에 걸고 원종은 안전한 장소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강원도 양양군 등 4개 지방자치단체에 정부 보조금으로 4900만∼1억원을 각각 지급했으며, 해당 지자체는 자체 예산을 더해 범종 복원·복제작업에 나섰다.

문제는 문화재위원과 문화재청·지자체 관계자 등이 자문위원회를 구성, 여러 차례 회의를 열어 전통방식에 대한 자문과 고증을 했으면서도 복원·복제종이 모두 현대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본지 취재 결과 주철장 원광식(69)씨는 2006년 낙산사 복원종을 제작하면서 종 모형(몸체)을 전통방식에서 쓰는 밀랍 대신 주물용 왁스로 만들었고 주물사(거푸집을 만드는 모래)도 현대식 재료를 썼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낙산사 범종의 경우 산불로 보물을 잃은 온 국민의 상실감을 감안하면 시방서에 전통 제작방식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더라도 전통방식으로 복원했어야 마땅하다고 입을 모은다. 원씨가 1982년에 만든 상원사 동종(국보 36호) 복제종도 옛 방식대로 만들지 않아 무게가 원종보다 222㎏이 무겁다.

특히 원씨가 각각 2006년과 2007년 만든 내소사·청룡사 복제종은 시방서에 ‘원형 복제에 가장 적합한 밀랍주조 공법’으로 적시돼 있으나 낙산사 동종을 만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됐다. 범종 전문제작업체인 A사도 2006년 통도사 동종을 복제하면서 종 모형 몸체를 현대식 소재인 FRP(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로 만들고 주물사도 현대식 재료로 썼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 김삼기 무형문화재과장은 “지자체에 보조금을 내려보냈으니 지자체가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지자체 관계자들은 “우리는 자문회의에만 참석할 뿐 해당 사찰이 제작을 주관했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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