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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국회 입성한 ‘탁구여왕’ 이에리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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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8-21 18:17:38 수정 : 2012-08-21 18: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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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미만 운동선수 술광고 금지는 건전한 체육현장 만들기 위한 것”
2012 런던올림픽 기간 누구보다 가슴 졸인 사람이 있다. ‘영원한 체육인’ 이에리사 의원(새누리당)이다. 탁구경기가 열리는 날은 밤잠을 설쳤다. 1973년 공산권 국가인 유고 사라예보에 입성해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긴 ‘탁구여왕’ 출신이다. 명함에 새긴 이메일 주소(sarajevo1973@assembly.go.kr)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선수 시절 전국종합선수권대회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하고, 1978년 은퇴한 뒤 체육학 교수,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5년 여성으론 첫 태릉선수촌장을 지낸 뒤 용인대 교수로 복귀했다가 새누리당 공천으로 여의도에 입성했다. 엘리트 체육인이 국회의원 배지를 단 것은 무려 39년 만의 일이다. 묘하게도 이 의원이 ‘사라예보의 기적’을 만들었던 그해 제9대 총선에서 고려대 역도부 출신 황호동(작고)씨가 전남 장흥·강진·영암·완도군에서 당선된 이후 처음이다.

그는 정치에 뜻이 없었음에도 제19대 국회 개원 3개월여 동안 25세가 되지 않은 운동선수·연예인이 주류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는 등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 775호실을 찾았을 때도 또 다른 법안 발의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탁구 얘기부터 할까요.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탁구에 대한 느낀 점이 있다면.

“탁구선수단이 귀국하는 날 공항에 나갔었다. 현재 전력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김경아 같은 경우는 올림픽 출전이 세 번째다. 경험도 많지만 우리 전력상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남자는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됐다. 브라질까지 가서 랭킹 포인트 쌓았고 그래서 중국을 피해 결승까지 올랐다. 노장 투혼이 빛을 발해 한국탁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펜싱 등 다른 종목들이 의외로 선전하다보니 탁구가 기가 죽었다. 그러나 자극 없이는 디딤돌이 생기지 않는다.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탁구인 모두가 심기일전해 세대교체를 비롯해 지도자 육성과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 탁구는 중국이 무서워하는 존재다. 우리는 저력이 있다.”

―탁구 하면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땄을 당시 상황과 국내 분위기를 알고 싶다.

“당시 라디오로 생중계가 됐다. 메달을 따고 귀국했을 때 정말 놀랐다. 유고가 공산국가라서 긴장을 많이 했으니까, 현지에서는 몰랐다. 대회를 마치고 김포공항에 내리니 거기부터 곧바로 생중계를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몇십명이 나를 에워싸다시피 해서 퍼레이드카에 태웠다. 공항에서 시청앞까지 오는데 거리에 수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시청 앞에 무대를 만들어서 환영행사를 치렀다. 건국 이래 처음이라 시청 앞에도 인파가 대단했다. 그리고 곧바로 청와대 들어가 무궁화훈장을 받게 됐다. 내가 4호였다.”

―어떻게 해서 탁구를 하게 됐나.

“아버지가 맨 처음 군수 하신 곳이 대덕이었다. 대덕군청 관사 안에 탁구대가 있었다. 관사가 아주 넓었고 정원에 탁구대가 있어서 탁구를 쳤다. 그런데 가족들이 나를 끼워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뱃돈으로 문방구에 가서 라켓을 사서 혼자 벽을 보고 ‘똑딱볼’ 을 쳤다. 당시만 해도 여자들에게 스포츠가 제한적이었다. 선화초등학교 때 특활반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면서 대흥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그곳은 특활반이 아주 활발했다. 그래서 똑딱볼에서 제대로 넘기는 수준이 됐다. 당시 오빠가 대전중학교 탁구선수였다. 그래서 학교 특활반이 끝나면 대전중학교로 연습을 하러 갔다. 오빠들과 치면서 많이 배웠다. 당시 대전중학교는 전국에서 우승, 준우승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케일이 큰 남자 탁구를 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 제패, 중3 때 국가대표, 19살 때 세계를 제패했는데 비결이 있었다면.

“남보다 노력하는 것말고는 없었다. 남보다 시간 더 투자하고 훈련시간 늘리고 많이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력을 뒷받침할 체력 관리에 신경을 썼다. 장미란 선수가 ‘역도는 연습한 대로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명언이다. 그게 진리다. 어느 순간, 부분에 소홀하면 결과도 좋지 않게 나온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1975년 콜카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를 못한 것이었다. 비밀리에 선수를 육성한 중국이 이 대회에서 러버를 개발해서 나타났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말 가슴아팠고, 뼈아팠다.”

―여의도에 입성한 지 석 달 가까이 되는데.

“의원이 되고 보니 이전과는 환경이 너무 다르다. 마치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느낌이다. 여기 오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선수로, 지도자로 그리고 대학교수, 태릉선수촌장까지 한 걸 생각하면 나름의 준비 과정을 잘 거쳤다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리도 쉽게 하게 됐다.”

―원래부터 정치에 뜻이 있었는지.

“전혀 없었다. 정말 해서는 안 되는 게 정치라고 생각했다. 한길만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체육계를 떠나서 살지 않았다. 태릉선수촌장을 그만두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사단법인 ‘백인의여성체육인’을 만들었다. 29개 종목 국가대표 출신 여성체육인이 모였고, 앞으로 여성 체육인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로 했다. 체육에 관한 일도 하고 봉사활동도 병행했지만 활동범위가 한정돼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 제의가 들어왔고, 고민 끝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간 어떤 일을 하면서 보냈나.

“국회의원이 된 뒤 여야 의원들에게 체육계의 애로사항, 시급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프로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아마추어 종목 선수들까지 확대하는 승부조작 금지, 아마추어 종목에 대해서만 도핑 금지를 하고 있는 것을 프로종목까지 확대하는 도핑 의무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민체육진흥법안을 발의했다. 이런 것들은 이미 제도화돼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른 의원들에게 이런 얘기하면 깜짝 놀란다. 앞으로 연금 등 각종 비현실적인 제도들에 대한 보완책 마련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을 참이다.”

―만25세 미만의 운동선수, 연예인이 주류광고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선진국은 담배까지 포함해서 10년 전부터 이미 시행해왔다. 문화가 완전 개방되고 스타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만들어서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을 보호해야 한다. 누르거나 기득권을 뺏으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제도를 만들어 체육현장을 더욱 건전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맥주광고에 등장하는데, 이 법안을 들여다보면 김연아 선수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4년 동안 체육정책에 대한 의정활동을 많이 할 것이라고 보는데.

“나는 교과위 소속 의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체육의 근간인 학교체육에 대해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 잘된 일이라고 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대로 국민들에게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체육인들의 형편이 좀 나아졌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느꼈던 노하우로 아쉬움과 후회가 없도록 할 것이다. 체육인 데려다 놓으니 ‘일 잘하더라’ 그런 소리를 들어야 다른 체육인들이 또 여의도에 올 수 있지 않겠나.”

―에리사라는 이름, 특별한 의미가 있나. 일반인들도 궁금해한다.

“언니랑 아버지가 막내딸은 이름을 특이하게 지어보자는 생각에서 그랬다. 다른 뜻은 없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1953년에 즉위했었는데 내가 1954년생이다. 아버지가 여왕처럼 귀한 존재가 되라는 바람으로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다.”

―4년 뒤의 일이긴 하지만 정치를 그만둔 뒤의 계획도 밝혀 달라.

“용인대에 사표를 냈다. 그런데 학교에서 왜 사표를 내느냐고 했다. 학교가 배려해준 덕에 국회의원이 됐는데 ‘학교의 말씀’을 거스르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나중 일이고, 일단은 지금 하는 일에 충실하려고 한다.” 

대담 = 옥영대 체육부장

정리=김준영, 사진=허정호 기자

● 프로필

●1954년 충남 보령 출생 ●대전 대흥초 6년, 전국선수권대회 우승 ●문영여중 3년, 종합선수권대회 우승, 국가대표 ●국내 대회 7관왕 ●서울여상 3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단·복식 우승 ●사라예보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 ●서울올림픽 여자대표팀 감독 ●용인대 교수 ●아테네올림픽 여자대표팀 감독 ●태릉선수촌장 ●제19대 국회의원(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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