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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애니메이션 풍요 속 국내 창작품은 기근

입력 : 2013-03-15 20:36:35 수정 : 2013-03-15 20:3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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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 ‘돌핀’… 4월까지 7편 줄줄이 개봉
주5일 수업·가족 관객 증가로 ‘방학 전용’ 고정관념 깨져
수입에만 의존… 구매가격 껑충, 열악한 국내 제작 환경에도 악영향
애니메이션 시장에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 고객층인 초·중·고등학교가 개학했지만 이달에만 해외 애니메이션 5편이 개봉하며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블록버스터를 제외한 만화영화는 어린 관객층을 겨냥해 주로 방학에 극장에 걸렸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활기를 띠는 데는 주5일 수업이 정착하고 가족 관객이 늘어난 점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영화사들이 이 시장에 몰리면서 방학 때 마수걸이를 하지 못한 작품들이 봄맞이를 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최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들여왔다. 수입 편수가 늘면서 해외시장에서 구매 가격이 높아지고 배급 경쟁이 치열해지는 부작용이 불거지고 있다. 

‘글래디에이터: 로마 영웅 탄생의 비밀 3D’.
◆3월에만 5편… 4월 예정작도 2편


이달 첫 테이프를 끊은 작품은 14일 개봉한 ‘글래디에이터: 로마 영웅 탄생의 비밀 3D’이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글래디에이터가 되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어서 21일에는 ‘돌핀: 꿈꾸는 다니엘의 용감한 모험’과 ‘원피스 극장판 제트’가 나란히 스크린 나들이를 한다. ‘돌핀…’은 돌고래 소년 다니엘이 꿈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28일에는 ‘유다의 사자: 부활절 대모험’과 ‘후세: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이 개봉한다. ‘유다…’는 마구간에서 무료하게 지내던 동물들 사이에 용감한 어린 양 유다가 들어오면서 전개되는 모험담이다. 일본에서 만든 ‘후세…’는 유일하게 15세 관람가로 청소년·성인을 위한 만화영화다. 개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후세’를 둘러싼 사냥과 안타까운 사랑을 그렸다.

‘후세: 말하지 못한 내 사랑’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스카이포스 3D’가 개봉해 12일까지 약 5만명을 모았다. 4월에도 ‘꼬마영웅 경찰차 프로디’와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이 관객을 찾는다.

비수기인 3월에 애니메이션 개봉이 줄을 잇는 현상에 대해 영화계는 주5일 수업과 함께 가족관객 증가를 원인으로 꼽는다. 홍보사 아담 스페이스의 김은 대표는 “‘놀토’의 영향인 것 같다”며 “이미 공연계에는 아이들 대상으로 마케팅하는 회사가 생길 정도로 아동문화시장이 형성된 상태”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또 “30∼40대 초반인 초등학생 엄마들은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 극장 나들이가 익숙하다”며 “영화는 저렴하게 집 근처에서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올겨울에 20편이 훌쩍 넘는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서 미처 방학 시장에 끼지 못한 작품들이 많은 것도 한 원인이다.

국내 외화 시장이 침체하면서 영화 수입사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눈길을 돌린 것 역시 개봉 편수 증가에 기여했다. 최근 블록버스터를 제외한 외화들은 관객 10만명을 넘기기가 어렵다. 이러다보니 목표 관객이 분명하고 부가판권 시장이 있는 애니메이션이 매력적으로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을 만든 이대희 감독은 “중·소규모 만화영화 수입 가격이 보통 1억∼2억원 선이고 마케팅·더빙 비용을 더해도 제작 단가가 크게 높지 않으니 15만∼30만명 정도 관객을 바라보며 뛰어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애니메이션 시장 확대는 국내 창작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감독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시장성이 있음을 영화계에서 인정하게 된 것 같다”며 “지난해 ‘파닥파닥’을 끝낸 뒤 투자·제작 제의가 여럿 들어왔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파닥파닥’을 만들던 초창기에는 기획서나 시나리오를 들고 가도 반응을 안 보였는데 이제는 영화계에서 가능성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개학해 비수기인 3월에 애니메이션 5편이 개봉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돌핀: 꿈꾸는 다니엘의 용감한 모험’
◆시장 커졌지만 수입가·배급경쟁 높아져


시장 과열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외국 애니메이션 수입이 늘면서 가격이 올라가고 배급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영화수입사 스마일이엔티 문진희 과장은 “예전에 경쟁이 적을 때는 해외 업체에서 처음 제안하는 가격(에스킹 프라이스)보다 낮게 사오려고 협상했다”며 “이제는 시장이 과열되다보니 제안 가격에서 더 내려지 못하고 그 선에서 시장 가격이 형성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문 과장은 또 “극장에 거는 데도 경쟁이 많아졌다”며 “이전에는 극장을 가진 배급사에 들어가는 외부 의뢰가 여름·겨울에 4∼5편 정도였다면 요즘은 2∼3배 증가했다”고 말했다.

관객층이 얼마나 확대될지도 의문스럽다. 영화홍보사 이노기획의 최원영 대표는 “4∼5년 동안 매년 시리즈로 개봉한 작품들을 보면 첫해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왔는데 지난해에는 말도 잘 못하는 미취학 아동이 오더라”라며 “요즘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성인과 같은 문화, 특히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기려 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또 “애니 홍보를 위해 부모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더빙에 기용하다보니 인기 개그맨·가수들이 바닥 나 겹치기 더빙까지 생긴다”고 전했다.

‘원피스 극장판 제트’
최근의 애니메이션 붐에서 국내 창작 작품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이 감독은 이에 대해 “전반적으로 제작사가 적은 데다 투자 관리 등 장편을 제작하는 노하우가 아직 부족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애니메이션 시장의 활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스마일이엔티 문 과장은 “국내 업체들이 2014년 초 개봉 예정인 작품들의 판권을 이미 구매했기에 한동안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겠지만 몇 년씩 가지는 않을 듯하다”고 내다봤다. 최 대표 역시 “수입한 작품들을 풀어야 할 테니 내년까지는 애니메이션이 계속 시장에 나올 것 같다”고 예상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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