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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천국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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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09 17:28:59 수정 : 2011-06-09 17: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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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에 찬 멜로디 은은한 떨림 ‘생명의 나무’로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감독 테런스 맬릭은 그야말로 실존하는 전설 속 인물이다. 아카데미와 칸을 비롯한 유수의 시상식장에 결코 얼굴을 내비치는 일이 없었으며, 작품들 사이의 공백기간은 20년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은둔의 수도사처럼 숨죽여 지냈던 그는 띄엄띄엄 작품활동을 하면서도 결코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기 배우들과 대형 영화사들은 자처하고 그의 작품에 참여하려 들었다.

영화의 역사에 길이 남을 영상미를 통해 완성된 맬릭의 걸작이 바로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이다. 철저하게 자연광만을 고집하면서 담아낸 황혼의 순간들은 매일 하루 해가 지기 직전 오직 단 두세 시간 동안에만 꾸준히 촬영된 장면들이었다. 이 경이로운 시간을 두고 사람들은 ‘매직-아워’라 불렀다. 화면의 색조와 터치는 배우들이 연기하는 등장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비교적 적었고, 그 대신 정경이나 풍경의 묘사가 그들의 감정을 표현해줬다. 결국 촬영감독 네스트로 아르멘드로스는 이 작품을 통해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다.

20세기 초, 시카고의 철강소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리처드 기어의 우발적 살인으로 인해 연인인 브룩 애덤스,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텍사스의 광활한 보리밭으로 도주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유복한 농장주(샘 셰퍼드)가 애덤스에게 반하게 되고 점점 이야기는 비극적 결말로 향해간다. 작품 내내 흐르는 어린아이의 내레이션을 통해 이 어른들의 세계는 마치 한편의 동화처럼 펼쳐진다.

몇몇 이들은 본 작의 사운드트랙을 두고 엔니오 모리코네 최고의 걸작이라 칭하기도 했다. 대사가 적었기 때문에 화면만큼이나 음악의 역할 또한 절대적이었다. 모리코네의 멜로디는 평소에 비해 한층 더 우수에 차 있으며, 은은한 떨림은 등장인물들과 자연경관 사이의 관계를 이어준다. 그리움을 주는 메인 테마, 플루트를 사용하면서 마치 가족 영화적 무드를 조성해낸 ‘해피니스’, 그리고 ‘스레싱’과 같은 트랙의 경우엔 마치 마이클 니먼의 미니멀한 곡조처럼 구성시켜 놓기도 했다. 기본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칙적 시도를 해내고 있는 셈이다. 사운드트랙 역시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프랑스 대표 낭만주의 작곡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수족관’ 파트가 흐른다. 이 익숙한 신비로움은 영화 시작 무렵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레오 코트케의 싱그러운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 그리고 소녀의 내레이션 또한 음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결말은 어찌보면 가혹하지만 영화의 제목 ‘천국의 나날들’은 이에 대한 역설이 아닌 실제로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 짧은 시간들을 지칭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국이 아닌 지상에서의 ‘천국과도 같은 나날들’은 결국 그 끝이 있는 법이다. 뻔한 인간사의 진리이겠지만 좋은 날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이 때문에 영화에서 펼쳐지는 젊은이들의 순박함과 잔혹한 현실은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음악과 충돌하면서 더욱 큰 마음의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화면에 취하고 음악에 취한 채, 철저하게 모든 감정을 수반하고 있는 한편의 예술 작품이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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