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상은 청춘이 불온하고 청춘은 세상이 불안하다
아프다. 청춘을 다룬 영화들은 쾌활하거나 우울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잔혹하거나, 의미 있거나 공허하거나에 상관 없이 아프다. 결국 아프다. 아파서 아름다운 게 아니라 아름다워서 아프다.

청춘은 독이다. 감자의 여린 싹에 있는 독성물질인 ‘소라닌(솔라닌)’처럼. 독이지만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독(毒). 자연스러움이 매력적인 미야자키 아오이 주연의 신작, ‘소라닌’은 바로 청춘의 독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적성과 무관한 직장에서 복사기나 돌려야 하는 메이코(미야자키 아오이)와 자신의 꿈인 밴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연명하는 그녀의 동거남, 다네다(고라 겐고). 이들이 그려내는 청춘 스케치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그렇다고 진부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청춘의 일상이지만 알싸한 아픔으로 잔잔하게 술렁인다.

어느 날 불현듯, 메이코는 지겨운 회사를 그만두고 잠깐의 자유를 얻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벗어날 길이 없다. 대학 시절 록밴드에서 만난 연인 다네다는 음악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꿈과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허덕이며 살아간다. 밴드의 친구들인 만년 대학생 가토와 아버지 약국을 물려받은 빌리 역시 다네다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청춘의 몰골들이다. 그들은 모두 밴드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지만, 자신들이 그 꿈을 성취하리라 기대할 수도 없는 무력한 청춘일 뿐이다.

세상은 늘 청춘의 편이 아니다. 세상은 청춘이 불온하고, 청춘은 세상이 불안하다. 청춘이 죽어야 삶이 이어진다. 순간이 영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영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천진한 그들이 쏘아 올린 작은 불꽃들은 이내 어두운 창공으로 사라지고, 현실은 세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들을 몰아넣는다.

자신을 음악의 길로 이끌었던 자가 연예기획사의 평범한 사원으로 전락해 있음이, 공들여 만든 음반은 허드레 취급을 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임을 더 이상 부정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음악에 대한 마지막 열정을 놓지 못했던 다네다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청춘의 늪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의 죽음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꿈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그 꿈을 간직한 채 성장을 멈추는 것이 차라리 행복이었을까.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다네다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메이코에겐 솔라닌이다. 슬픔과 절망의 독.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딛고 일어서야 하는 독. 다네다를 위해, 그녀 자신을 위해, 그들과 같은 청춘들을 위해 메이코는 다네다가 유작으로 남긴 ‘소라닌’을 서투르지만 열정적으로 부른다.

“느긋한 행복이 계속된다면 나쁜 씨앗이 싹을 틔워 이별을 맞이 할” 것이라는 ‘소라닌’의 노랫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 울려 퍼진다.

언뜻 ‘소라닌’은 참 힘없고 착하기만 한 영화처럼 보인다. 아프지만 말랑말랑하고, 여느 청춘의 죽음을 다룬 영화에서 보이는 의미과잉이나 치기 어린 감정의 분출도 없다. 시대와의 불화에 대한 결기 어린 저항은 말할 것도 없고, 기성 사회를 향한 분노를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상투적인 이 영화가 못내 아리고 쓰린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청춘에 대한 공감 혹은 회고 때문이다.

누구나 청춘을 맞이하며 누구나 청춘을 뒤로 한다. 청춘을 맞이하는 자들의 쓰라린 공감과 청춘을 뒤로 한 자들의 아련한 회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감의 음역대가 영화 ‘소라닌’의 힘이다.

교사·영화평론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천우희 '미소 천사'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
  • 한지민 '우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