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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석의 진료실 옆 영화관] ‘컴 아웃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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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05 22:22:09 수정 : 2009-11-05 22: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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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그 흔들리는 관계 크게 성공한 운동선수나 음악가들 뒤에는 이를 가능케 한 부모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김연아 선수의 경우도 다섯 살 때부터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모든 것을 관리해준 어머니 박미희씨가 있었다. 필자는 김연아 선수가 3년 전 한 방송인터뷰에서 “내 딸한테는 절대 스케이트를 시키지 않겠다”고 말할 때 옆에서 조용히 듣던 박씨가 “내 딸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면서 흘렸던 눈물을 기억한다. 박씨 역시 항상 고민했으리라. 어떤 게 진정 딸에게 도움이 되는 길인가를. 그리고 당장의 훈련을 위해서, 앞으로의 성공을 위해서 늘 매정하게 딸을 몰아세워야 했던 어머니의 고뇌와 아픔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모든 고뇌와 아픔이 늘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한 바네사 메이가 법적으로 성인인 스무 살이 되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동안 매니저를 자처하며 모든 것을 관리하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한창 놀고 싶은 어린 시절을 연습과 훈련에 매어 두는 일은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처럼 폭력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마이클 잭슨은 5살 때부터 무대에 세워졌고 냉혹한 쇼 비즈니스 세계에서 엄청난 스케줄을 감내해야 했다. 마이클 잭슨은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나타나면 모두 공포에 떨었고 죽을 만큼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어린 시절을 그렇게 빼앗겼던 잭슨이기에 평생 그 시절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컴 아웃 파이팅’의 숀은 뉴욕의 길거리에서 짝퉁 물건이나 팔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우연히 숀의 싸움 실력을 본 하비는 돈벌이를 위해서 그를 파이트 클럽으로 끌어들인다. 무심하게 흘러가던 영화의 후반부, 숀의 과거는 인터넷 기사로 쓱 지나간다. 그는 잘나가는 레슬링 선수였고 그 팀의 코치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숀을 가혹하게 훈련시켰고 어느 시합 날 꾹 눌러놨던 분노가 폭발한 숀은 아버지를 폭행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후로 그는 쓰레기로 낙인찍혔고 사회에서도, 가족에서도 버림받았다. 몇 번의 싸움에서 승리한 숀은 영화의 종반부에서 자신이 패륜아로 내몰렸던 상황에 다시금 처하게 된다. 이전과 다른 점은 그 대결을 자기 자신이 원하고 있다는 것과 지극히 현실적인 지금의 코치는 숀이 지는 것을 원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파이트 클럽이라는 자극적 외피를 둘렀지만 기본적으로는 가혹한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은 남자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새로운 아버지를 만나서 방황을 끝내고 유사 가족을 만들어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화면은 경쾌한 리듬과 함께 자동차 하나가 다리 위를 시원스럽게 달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아버지 역할을 맡게 된 하비와 숀의 애인, 그리고 그녀의 할머니와 딸.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던 이 다섯 명의 구성원은 두둑한 밑천을 희망 삼아서 새로운 사회로 다시 나아간다. 이들은 과연 새로운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가족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아버지는 어머니에 비해 포용력이 부족하고 아들은 딸보다 반항적이기 쉽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다른 조합보다 좀 더 불안정하기 마련이다. 6살 된 필자의 아들도 벌써부터 자신이 부당하게 혼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씩씩거리며 눈을 치켜뜨고는 한다. 사회의 훌륭한 구성원으로 자식들을 키우는 일은 정말 매순간 고민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공평한 것은 나 자신도 어릴 적에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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