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와 개그맨 노홍철이 인기 방송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부른 ‘흔들어주세요’는 승민이의 애창곡이었다. 댄스풍의 이 노래에 맞춰 춤추고, 개그맨 박명수의 흉내도 곧잘 따라했다. 그러나 승민이의 시간은 2011년 12월20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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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괴롭힘을 피해 1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권승민군의 어머니 임지영씨가 14일 아들이 남긴 가족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 승민이는 이 방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듯 가족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
“침대보와 이불을 철마다 갈고 있어요.”
수업이 끝나면 금방이라도 아들이 돌아올 것으로 믿고 있는 어머니 임지영(48·교사)씨의 마음속에서 승민이는 여전히 중학교 2학년이다. 아직도 임씨는 또래 아이들이 하교하는 걸 보고는 ‘우리 승민이도 집에 오고 있겠네. 엄마가 집에 있으니 좋아하겠다’는 생각에 현관 문까지 걸어나가곤 한다. 그러다가 이내 임씨는 방문 앞 영정을 보고는 울음을 터뜨린다.
임씨는 아들을 떠나보낸 후 ‘학교폭력과의 전쟁’에 몸을 던졌다. 아들의 영정 앞에서 그는 ‘너처럼 억울한 아이가 없게 해줄게’ 하고 약속했다. 지금의 임씨를 지탱하는 힘이다.
승민이가 다니던 D중학교 교사들은 사건이 알려지자 우르르 집에 몰려와 “우리도 힘들다”고 성토했다. 여태까지 한마디 사죄도 없는 승민이의 담임교사는 가해자 서모(15)군과 우모(15)군에 대해 ‘일진이 아니니 선처해 달라’고 법원에서 탄원했다. 서군과 우모군 부모는 시도 때도 없이 ‘용서’를 요구하며 들볶았다.
정치인들도 한때뿐이었다. 올여름 학교폭력대책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승민이 엄마입니다. 학교폭력 대책에 잘 신경 쓰십시오’라는 이메일을 보냈지만 상당수는 대답조차 없었다.
그래도 임씨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픔을 나눌 이웃도 생겼다. 영주의 상화네, 부산의 다금이네 등 학교폭력 피해자 유가족들과 고통을 나누며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있다. 승민이가 죽은 뒤에도 전국에서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속출했고, 정부는 대책을 크게 강화했다.
임씨는 앞으로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딴 뒤 학교폭력 문제에 발벗고 나설 생각이다. 학교폭력 관련 심리상담을 맡은 경찰관들에게 “같은 일로 아픔을 겪는 부모님이 있다면 도와드리겠다”는 제안도 했다.
“승민이가 사용하던 스케치북이에요. 승민이랑 엄마, 아빠, 형이 밥을 먹으며 즐겁게 얘기 나누던 장면인데. 잘 그렸지요.”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대구=박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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