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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무기 이야기] 6.25 전시 맹활약…육군 첫 전차 바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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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11-01 09:45:00 수정 : 2012-11-01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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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후 美軍이 제공… 성능은 떨어져 6·25전쟁 초기만 해도 국군은 이렇다할 전차를 보유하지 못했다. 밀려드는 북한군 탱크에 맞서기 위해 폭탄을 들고 맨몸으로 돌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당시 빈약했던 국군의 무기체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국군 창설과 함께 미군이 우리 군에 제공한 지상무기는 M8 그레이하운드(정찰용 장갑차)와 M2·M3(수송용 장갑차) 등이 고작이었다. 6·25전쟁이 터지자 다급해진 미국은 M36 잭슨(대전차 자주포)을 한국군 기갑부대에 인도했다. 하지만 북한이 38선을 넘어설 때 선봉에 섰던 소련제 T-34/85 전차에는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미군은 급한 대로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던 M4A3E8 ‘이지에이트’ 679대를 전선에 투입했다. 이 또한 북한군의 T-34/85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차 제작 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담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북한에 뒤지던 전차 전력은 미국이 1940년대 후반 개발한 최신 모델 M46·M47 패튼전차를 전선에 투입한 뒤에야 만회할 수 있었다.

6·25전쟁 이후 미군은 이지에이트를 한국에 남겨두었고, 이는 우리나라 전차 전력의 실질적 출발점이 됐다. 이전까지 미국이 한국에 제공했던 M8 장갑차나 M36 자주포와는 차원이 다른 전차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군보다 먼저 전차부대를 꾸린 곳이 있었다. 해병대였다. 해병대는 육군에 앞서 M36을 도입해 전차중대를 편성하고 있었고 1951년에는 이지에이트로 중대급 부대를 편성했던 것이다.

이지에이트는 M4 ‘셔먼’(Sherman) 전차의 개량형이다. 수직현가장치(HVVS)를 도입하고 궤도의 폭을 넓혀 지면에 닿을 때 받는 압력 즉 접지력을 낮췄다.

기동성이 좋아지자 더 두꺼운 장갑을 갖춰 방호력도 함께 개선됐다. 여기에 주무장을 강화해 관통력까지 증대되면서 이지에이트는 매우 효율적인 중(中)전차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M4 셔먼 자체가 성능 좋은 전차라는 평가와는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개량형인 이지에이트도 막강 전차로 자리매김하기는 어려웠다. M4 셔먼이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대표 전차로 알려지게 된 데는 성능이 좋아서라기보다 미국의 엄청난 생산능력 덕에 5만대 가깝게 유럽과 아프리카 전선에 깔린 덕분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육군은 우리나라에 남겨진 이지에이트 388대로 1954년 2월 5전차대대 창설을 시작으로 6, 7, 8, 9, 11, 12전차대대가 그해 6월부터 8월 사이에 잇따라 창설, 모두 7개 전차대대를 보유하게 됐다.

이후 1960년대까지 우리 육군의 유일한 전차 전력을 담당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질이 아닌 양으로 승부하기 위해 제작된 M4 셔먼 계열 전차가 우리의 육상 방위를 전담한 셈이었다.

이후 육군의 전차는 패튼전차의 3세대인 M48로 한단계 도약한다. M48계열 전차의 등장 이후 어딘지 모르게 둔해보이는 이지에이트는 한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안두원 기자 flyhig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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