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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신문활용교육)] 반려동물은 인간의 노리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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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17 19:53:18 수정 : 2011-07-17 19: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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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TV방송으로 유명해진 일명 ‘우면산 망부석 고양이’가 20대 남성한테 입양된 뒤 다시 버려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남성은 ‘평소 고양이들에 대한 애정과 극진한 보호 활동’을 강조하며 다른 입양 희망 신청자들을 제치고 우면산 고양이를 입양했지만 상습적인 동물유기범인 것으로 드러났다. ‘동물 애호가’를 자처하며 유기된 ‘반려동물’을 입양한 뒤 학대하거나 팔아넘기는 일이 적지 않아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중략)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 선호 인구가 늘지만, 버려지는 동물도 급증하고 있다. 2003년 2만5278건이었던 유기동물 발생 건수는 2009년 8만2658건, 2010년 10만899건으로 4배 가까이 늘었다. 동물 입양이 권장되지만 제대로 된 보호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동물 입양 대부분이 인터넷으로 이뤄지다 보니 입양 희망자가 밝힌 생활환경과 동물 애호 수준 등을 확인하기 힘들어 사기 입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 3년 전에는 생활정보지에 ‘못 기르는 개 보내주면 사랑으로 보살피겠다’는 광고를 낸 뒤 입양한 개 수백 마리를 팔아넘긴 사람이 적발되기도 했다.

(2011년 7월 13일 세계일보 기사)

어린이 동물보호교실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강아지를 어루만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경제 수준이 향상되면서 우리 사회에도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거리마다 동물병원과 애견 미용실이 성업하는 모습만 봐도 한국인의 동물 사랑은 결코 서구인에게 뒤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물을 대하는 한국인의 사고는 매우 모순적이다. 한때 동물병원과 보신탕집이 나란히 영업하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러온 적이 있었다. 물론 일회성 흥밋거리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동물병원과 보신탕집의 어색한 공존을 담은 모습이 어쩐지 동물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이율배반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 같아 뒷맛을 씁쓸하게 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은 인간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도 하며, 대량 사육을 통한 이윤 추구의 수단이기도 하다. 또한 삶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위안자이기도 하며 지구 생태계에서 함께 공존해야 하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즉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임과 동시에 생태 공동체를 살아가야 하는 공생의 관계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과 동등한 대우 받아야

서양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데카르트는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성의 유무에서 찾았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며 이러한 이성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동물은 기계와 다름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인간 이성을 세계의 근본으로 생각한 사상가였으므로 동물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 역시 그와 같았던 것이다. 이성중심의 사고가 지배한 근대문명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체와 수단의 관계로 바라본 것도 그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인간 이성 중심으로 설정했던 근대적 가치관이 오늘날 어떠한 문제점을 초래했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환경과 생태 문제는 물론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를 수단과 도구로 바라보면서 스스로를 소외의 늪으로 빠뜨렸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닐 듯하다.

이러한 근대적 동물관은 공리주의자 벤담에 의해 비판받게 된다. 벤담은 인간과 동물을 이성적인 능력의 유무로 나눌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에 따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동물들은 비록 이성적 능력은 없지만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벤담의 주장은 피터 싱어에게로 계승되어 동물해방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정당하지 않은 것과 똑같은 논리로 동물에 대한 차별(종차별)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안덕훈 비상에듀 논술강사
상호 존중 ‘나와 너’의 관계로


우리의 상황을 감안할 때 피터 싱어의 논리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모든 생물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전제로 유지되고 순환한다. 하지만 피터 싱어를 비롯한 동물해방논자들의 주장을 현실을 무시한 이상주의로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 사건 역시 단지 몰지각한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동물 유기범이나 상습적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은 논외로 치더라도 평범한 우리들 역시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동물을 일종의 기계로 보았던 근대 초기 데카르트의 동물관을 크게 벗어났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함께 생활하는 반려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생명으로 생각하기보다 인간을 위한 놀잇감으로 취급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위한다는 핑계로 동물의 건강이나 쾌적한 생활과는 거리가 먼 과도한 미용이나 심지어 성대수술 등을 강제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일종의 종차별적 행위를 일상적으로 행하는 꼴이다.

독일의 사상가인 마르틴 부버는 사회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두 가지 층위로 구분했다. ‘나(I)와 그것(It)’의 관계는 주체의 입장에서 상대를 도구와 수단으로 바라보는 낮은 수준의 관계 맺기다. 보다 높은 수준의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상호 대등과 존중을 전제로 하는 ‘나와 너’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한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대우하는가를 보면 그 사회의 인권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나와 그것’의 방식으로 동물을 바라본다면 인간끼리의 관계 맺기 역시 ‘나와 너’의 관계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안덕훈 비상에듀 논술강사

■생각해볼 문제

1. 생명으로서 인간과 동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해보자.

2. 벤담이 주장한 고통감수능력 유무에 따른 권리인정을 받아들인다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정해야 할지 생각해보자.

3. 인간과 동물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바람직한 관계 맺기에 대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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