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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 Life] 리비아에 푸른 변화 이끄는 걸프법인 이재룡 이사

입력 : 2008-09-17 17:36:08 수정 : 2008-09-17 17: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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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농장 건설… 한국인 땀·꿈이 영근 '녹색 기적' 사하라는 그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다. 사하라의 품에서 그는 잠들고 젊음을 보냈다. 어머니의 젖줄과 같은 사하라의 생명수를 길어 황량한 사막을 푸른 들로 바꾸었다. 걸프법인 이재룡(52) 기술담당 이사는 끝없이 펼쳐진 사하라 모래땅에 청춘을 묻은 사람이다. 그는 아프리카 리비아의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로 바꾸는 ‘녹색 기적’을 빚어내고 있다. 한국의 대우건설과 리비아가 공동으로 세운 걸프법인의 한국 기술자들은 멀리 용수를 끌어와 이미 100㎢(3000여만평)가 넘는 와디베이 농장을 일궜다. 이들은 사막에 새 길을 놓고 물길을 잡아 여의도의 33배가 넘는 농장을 만들었다. 여기로 들어오는 물 역시 온전히 한국의 기술력이 뒷받침됐다. 대한통운(옛 동아건설)이 20년 넘게 사하라 사막에서 퍼올린 지하수가 한반도 길이보다 더 긴 대수로를 거쳐 수도 트리폴리 동남쪽의 와디베이 농장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열사의 땅에 푸른 기적을 일군 그를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이 이사는 “와디베이는 한국인의 꿈과 땀으로 탄생한 거대한 오아시스”라면서 “녹색으로 바뀐 농장에서 풀을 뜯으며 여유롭게 노니는 낙타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초록 벌판에는 지금 낙타 700여마리와 양 100여마리, 타조 2000여마리가 자라고 있다. 두 해 전에 사육을 시작한 낙타와 타조는 빠르게 번식해 어느새 식구가 두세 배씩 늘었다. 농장 안 타조 부화장에선 매일 20마리씩 새 생명이 태어난다. 드넓은 벌판엔 옥수수와 밀, 귀리 등이 이글거리는 태양빛을 받아 자라고 이들 농작물 위로는 대형 스프링클러가 쉴 새 없이 물을 뿜어낸다. 와디베이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리비아 정부는 앞으로 서울 면적만 한 농장을 더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와디베이 농장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농장의 장비가 고장 나거나 펌프장에 일이 생기면 곧장 달려간다. 땀과 혼을 송두리째 바친 곳이기 때문이다. 모래땅을 개간하면서 사막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서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청한 날도 많았다. 그는 그때의 텐트를 도시의 별 다섯개짜리 호텔에 빗대 ‘사우전즈 스타 호텔(Thousands Star Hotel)’이라 부른다.

이 이사는 “태양빛이 속살을 파고드는, 물기 하나 없는 그곳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푸른 농토를 건설한 일이 꿈만 같다”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이렇게 탄생한 와디베이 농장을 보고 리비아 최고지도자 카다피도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공사 현장을 두 번이나 찾은 그는 콸콸 쏟아지는 물에 손을 적시며 “미야 미야(최고다)!”라고 소리쳤다.
◇붉은 모래땅에 물을 대 만든 와디베이 농장(왼쪽)의 녹색 물결 위로 스프링클러가 쉴 새 없이 물을 뿜어대고 있다.

8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그의 걸프법인은 세계 인종박람회장이나 다름없다. 푸른 신화를 빚어낸 한국인 전사 25명을 비롯해 리비아, 이집트, 가나, 이라크, 인도, 태국,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줄잡아 20개국이 넘는다. 그러다 보니 여러 나라 말을 뒤섞어 작업을 지시할 때가 많다.

“한번은 한국인 간부가 영어로 떠듬떠듬 작업지시를 내렸어요. 그러자 듣고 있던 방글라데시 직원이 ‘아저씨, 그냥 한국말로 하세요!’라고 소리쳤어요.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죠.”

그는 30대의 대우건설 ‘쫄따구’ 과장 시절에 리비아로 건너갔다. 1993년 회사의 윗분이 부르더니 “리비아 안 나갈래?” 하고 묻기에 두말없이 보따리를 쌌다. 건설회사 엔지니어라면 누구나 해외 현지법인 소장이 되고 싶어하는 시절이었던 까닭이다. 그렇게 시작한 리비아 생활이 올해로 16년째다. 하지만 혈기만 믿고 덥석 자리를 맡은 초보 소장에게 사하라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와 후끈거리는 마른 바람만이 쓸쓸히 이방인을 맞았을 뿐이다.
◇이재룡 걸프법인 이사(왼쪽)가 리비아 와디베이 농장에서 낙타를 키우는 목동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뒤이어 뜻하지 않은 시련이 덮쳤다. 미국의 리비아 경제제재가 가시화되면서 대우건설은 공사대금 5억달러를 고스란히 날릴 처지에 놓였다. 미수금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리비아 정부와의 지루한 협상이 계속됐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까지 찾아와 그룹이 해체되고 말았다. 모든 리비아 현장이 문을 닫고서 오직 미수금 해결을 위해 와디베이 현장만 살아남았다. 회사 지원이 끊겨 리비아에 함께 살던 가족과도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공항에서 가족과 헤어져 남몰래 가슴을 삭이던 그때가 아직도 선해요. 아들 둘은 아버지의 그늘이 한창 필요한 초등학교 5, 6학년이었으니까요.”

불행의 여신은 좀처럼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진 그해에 어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데 이어 아버지마저 3년 뒤 세상을 떴다. 장손인 그는 부친상 연락을 듣고 지구 반대편에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비행기편이 여의치 않아 런던을 거쳐 한국에 오는 데는 꼬박 닷새나 걸렸다. 7일장으로 늘려 겨우 장례를 치르고 다시 리비아로 발길을 돌렸다.

그의 억센 뚝심에 여신도 두 손을 들었는지, 고난의 먹구름도 점차 걷히기 시작했다. 헤어진 가족들은 작년 가을부터 모두 리비아로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아들 둘은 아랍어를 공부하고 있다.

미수금 협상도 2004년에 깨끗이 마무리됐다. 대우건설은 미수금의 일부를 재투자해 리비아와 합작으로 건설회사를 세웠고 그것이 지금의 걸프법인이다. 리비아 경제가 나아지면서 병원, 발전소, 호텔 등의 수주가 잇따라 회사 사정도 많이 좋아졌다. 그의 걸프법인은 현재 리비아 제3의 도시 서트와 히샤를 잇는 116㎞의 도로 건설을 포함해 10개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하라의 아들, 그의 여가생활이 궁금했다. 사막을 사랑하는 까닭인지 취미도 모래를 벗어나지 못했다. 주말에는 ‘사막골프’를 치는데,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모래에다 폐유를 섞어 만든 그린에 공이 올라가면 ‘나이스 샷’이란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사막이라 페어웨이가 없어 매트를 들고 다니면서 공을 올려놓고 쳐야 한다. 지난달에는 모처럼 한국 기술자들이 다 함께 모였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한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아랍 채널로 지켜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도 했다.

그는 매일 회사가 서트에 마련해준 집에서 모래벌판을 가로질러 100㎞쯤 떨어진 현장으로 출근한다. 처음엔 삭막하게만 느껴졌던 사막은 이제 더없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모래땅을 오아시스로 바꾸는 소명에 남은 힘을 쏟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꿈은 이루어집니다. 그런 기회를 한국에서만 찾지 말고 드넓은 세상에서 찾는다면 더 커지지 않겠어요?”

인터넷을 주고받으면서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에게서 섭씨 50도를 넘는 후끈한 기운이 전해졌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아니었다. 바로 그의 열정이었다.

배연국 기자 byko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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