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 이해없이 악감정만 키워 극단적 상황으로
경찰, 피해자 前 여친도 살인방조 혐의로 입건 최근 발생한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은 인터넷 시대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서로 잘 알지 못하면서도 취미 등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형성되는 ‘온라인상의 교우관계’가 현실 감각을 떨어뜨리고 갈등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다.
3일 서울 서대문경찰서 등에 따르면 피해자인 대학생 김모(20)씨 인간관계도 온라인 관계에 치우쳐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달 24일 살인 피의자 이군이 피해자 김씨에게 보낸 문자. 김씨가 이군의 여자친구 홍양에게 “헤어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내용이 담겨 있다. |
김씨의 죽음과 연관된 피의자들 또한 모두 인터넷을 통해 만났다. 김씨는 온라인 게임에서 박모(21·여)씨를 만나 사귀게 됐다. 피의자 홍모(15)양은 인터넷 코스프레 카페에서 만난 박씨에게 남자친구인 이모(16)군의 과외를 부탁했다. 김씨는 박씨가 회장으로 있던 ‘인터넷 음악밴드’ 스마트폰 대화방에서 이들을 만났다.
그러나 만난 지 3개월 만인 지난달 김씨가 박씨와 헤어지자 김씨와 다른 이들의 사이도 틀어졌다. 김씨가 박씨의 뒤를 이어 회장을 맡자 이군은 “리더 자격도 없으면서 회장을 맡았다”며 불만을 드러냈고, 대화방을 새로 만들어 김씨를 따돌렸다.
화가 난 김씨는 심령·악마 등에 관심이 있던 이군 등이 새로 만든 대화방을 “사령(死靈)카페 소굴”이라 부르고 이군과 홍양의 신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채팅방에서 이들 사이에 험한 말이 오가면서 갈등은 커졌다.
결국 이군은 홍양의 소개로 코스프레 카페에서 만난 윤모(18)군에게 지난달 29일 “흉기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며 “김씨를 뒤에서 제압해 주면 내가 흉기로 찌르겠다”고 구체적인 범행을 모의했다. 이군 등과의 관계를 풀고자 사과의 선물로 ‘그래픽 카드’를 손에 들고 서울을 찾은 지난달 30일, 김씨는 윤군 등에게 참혹하게 살해됐다.
경찰대 이웅혁 교수(경찰행정학)는 “김씨가 온라인 교우관계에서 배제되면서 큰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따돌림에 대한) 복수의 심리를 표현하다 안 되자 관계를 원상복구하고자 했지만 이군 등이 극단적으로 대응해 빚어진 참극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찰은 이군과 홍양, 윤군 등 3명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한편 김씨의 옛 여자친구 박씨를 살인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이군 등의 범행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고, 자신의 블로그에 ‘김씨가 죽어서 좋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조성호 기자 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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