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돈암동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역 앞. 군고구마 장사 경력 30년인 황모(63)씨가 벌겋게 달궈진 통 안에서 군고구마를 꺼내며 말했다. 기자가 동행취재한 지 2시간 만에 ‘마수걸이’ 손님은 50대 여성이었다. 이후 2시간이 지나는 동안 더는 찾는 손님이 없었다.
식생활 변화와 고구마 가격 상승 등으로 겨울철 전 국민의 간식거리였던 군고구마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13일 서울 돈암동 성신여대역 앞에서 30년 경력의 황모씨가 군고구마를 굽고 있다. |
13일 군고구마 통 제작사인 인천 K사에 따르면 매출이 크게 줄어 올해는 예년의 절반 수준인 1000개가량 팔려 나갔다. 군고구마 통은 불의 열기로 철판이 삭기 때문에 2∼3년에 한 번씩은 갈아줘야 하는데, 보통 이맘때면 2000∼3000개 정도가 팔렸다고 회사 관계자가 귀띔했다.
소매점에서 파는 군고구마 통 가격 역시 수년 전과 같은 15만∼25만원대로 오르지 않고 있다. 서울 종로의 D만물상 직원은 “예전에는 하루에 4∼5개꼴로 나갔는데 지금은 하루에 하나도 팔기 힘들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런 상황은 고구마 가격 상승이 가장 큰 요인이다. 중품 고구마 10㎏이 올해는 평년의 두 배인 2만6000원가량으로 올랐다. 황씨의 하루 매상은 고작 7만∼8만원. 하루에 10㎏ 두 상자를 굽는다고 감안하면 추위에 떨면서 한 고생치고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나마 눈이나 비가 오는 궂은날에는 장사를 접어야 한다.
서울 종로에서 군고구마 장사를 하는 김모(55)씨는 “고구마값이 너무 올라서 군고구마는 남는 장사가 아니다”면서 “붕어빵이나 다른 군것질거리도 함께 팔고 있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다”고 털어놨다.
퇴근길 시민들도 김씨에게 가격을 한 번 묻고는 “비싸다”며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입맛도 바뀌고, 집에서 고구마를 구워먹을 수 있는 2만∼3만원대 직화냄비가 등장한 영향도 크다. 과거에는 군밤이나 군고구마가 아이들의 간식거리였지만, 지금은 피자나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가 아이들의 입맛을 독차지하고 있다.
“삼양동에서 장사할 때는 하루에 10상자까지 팔렸어. 10㎏짜리 10상자면 100㎏이야, 상상이나 할 수 있어.” 황씨는 “지금은 아이들의 입맛이 달라져 그렇게는 팔리지도 않는다”고 푸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