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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낙태시술 중단' 선언한 산부인과 의사의 고백

입력 : 2009-12-28 09:51:36 수정 : 2009-12-28 09: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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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은 줄었지만 마음만은 홀가분”

월 평균 10여건 시술… ‘진오비’ 참여로 변화

“병원 30%만 동참해도 사회적 인식 바뀔 것”
일부 산부인과 의사의 용기로 시작된 낙태 반대운동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지난 10월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진오비)이 불법 낙태 자정운동에 나서면서 우리 사회에는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누구도 선뜻 말하길 주저한 낙태 문제가 처음으로 공론화됐고,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뒷짐 지던 정부가 산부인과 의사들과 ‘불법 인공임신중절 예방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내년 초를 목표로 낙태 근절 종합대책안 마련에 나서는 등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27일 ‘진오비’ 활동을 하면서 불법 낙태 시술을 그만둔 산부인과 전문의 A(38) 원장을 만났다. “(낙태 시술을 하면) 항상 기분이 찜찜하고 좋지 않았는데, 이젠 정말 홀가분하다”는 그의 첫마디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

A 원장이 낙태를 처음 경험한 것은 대학병원 레지던트 때였다.

당시에는 태아에 이상이 있거나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 한해 낙태 시술을 하다 보니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등의 큰 부담은 없었다.

하지만 전문의를 취득한 뒤 대형 분만병원에 근무하면서 낙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당시 이 병원에는 의사 3명이 근무했는데, 의사 1명당 하루 2건, 한 달 평균 50건의 낙태 시술을 했다고 한다.

A 원장은 “임신 주수에 관계없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바로 수술방으로 직행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러나 다른 의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낙태 시술을 대하는 분위기에 휩싸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는 그대로 따라 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A 원장은 2007년 8월 개원을 한 뒤에도 한 달 평균 10여건의 낙태 시술을 해왔다.

그러다 진오비에 참여하면서 지난 11월 낙태 근절을 선언했다.

“병원 직원들이 깜짝 놀라 ‘(낙태를 하려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하죠’라고 물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다”면서 “직원들이 여자 입장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서 낙태에 관한 인식 전환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진오비 활동이 더욱 활성화되더라도 낙태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A 원장은 “(낙태를 하지 않고) 준법진료를 하면 주변에서 동참할 의사가 많다”면서 “현재 3000여개에 달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에서 10%만이 낙태 근절운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30% 정도만 돼도 낙태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나 인식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말 속에 희망이 묻어났다.

낙태 시술 포기로 수입은 줄었지만 보람을 느낀다는 A 원장의 바람은 의료환경 개선이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산부인과 진료만 가지고 병원을 운영할 수 없어 비만이나 피부과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면서 “현재 대형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심한데, 1차 진료기관인 개인병원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p6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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