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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천년 역사 품은 일본 국화
일본인 벚꽃 기증 궁금할 따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단연 벚꽃이다. 지난해 삼성에버랜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봄꽃’ 1위를 차지했다. 이게 아니더라도 증거는 널렸다. 무엇보다 벚꽃 아래 쏟아지는 인파가 생생한 증거다. 대중을 이토록 열광케 하는 꽃이 또 있는가.

그럼에도 정작 벚꽃을 잘 알지는 못한다. 벚꽃이 언제 어떻게 심겼고, 어떤 풍상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인터넷 공간을 돌고 도는 ‘벚꽃 상식’만 봐도 알 수 있다. ‘벚꽃은 일본 국화인가’라는 질문과 근거 없는 답변이 물고 물린다. 어떤 이는 “일본이 국화(國花)로 지정했을 뿐 원산지는 한국”이라고 답하고, 또 어떤 이는 “일본 국화는 벚꽃이 아니라 국화(菊花)이며 일본엔 벚꽃이 자생하지 않았다”고 우긴다. 우문우답의 속 편한 결론은 하나다. “벚꽃은 원래 우리나라 꽃”이라는 것이다. 어설픈 ‘원산지 증명’으로 벚꽃의 국적을 정해버린 꼴이다.

잘못된 상식부터 바로잡고 가자. 일본은 벚꽃을 국화로 정한 바 없다. 그러나 일본의 나라꽃인 것도 사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의 상징이 된 게 아니다. 벚꽃엔 일본의 천년 역사가 녹아 있다. 고대 농경사회부터 벚꽃은 일본 대중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농민들은 벚꽃이 피면 모내기를 준비해야 할 때임을 알았고 벚꽃으로 쌀의 수확을 점쳤다. 벚꽃을 소재로 사랑과 젊음, 생명을 노래하기도 했다. 9세기경엔 귀족들도 찬미하던 매화를 버리고 벚꽃을 즐기기 시작했다. 중국문화권에서 벗어나 일본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었다. 1937년 미국에서 발행된 책, ‘Japan, Korea and Formosa’는 “8세기 이후 벚꽃은 일본의 국화였다. 9세기부터는 천황이 벚꽃축제를 열어 즐겼다”고 전하고 있다.

근대 역사에서 특히 벚꽃은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일본 군사정권은 벚꽃을 영토 확장의 상징으로,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벚꽃은 식민지에 꽂혀 일본제국령을 알렸고, “천황을 위해 사쿠라꽃잎처럼 지라”는 레토릭이 젊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원산지 증명’도 부질없다.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이므로 벚꽃은 원래 우리 꽃이라고 우기는 건 비약을 넘어 억지다. 벚꽃 종류는 200여가지에 이르며 국적을 따져 자랄 곳을 정할 리 만무하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는 물론 전 세계 아열대와 열대지방에 폭넓게 분포하는 자연일 뿐이다. 어느 네티즌의 지적처럼 벚꽃 원산지는 그냥 지구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땅의 벚꽃 역사는 아예 미지의 세계다. 일제 패망 이후 그 많던 벚꽃이 왜 자취를 감췄고 어떻게 다시 부활했는지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광복과 함께 거리의 벚나무는 베어졌다. 조선 대중의 분풀이 대상이 된 것이다. 벚꽃 도시 진해의 경우 10만 그루에 달하던 거리의 벚나무가 모두 베어졌다고 진해의 향토사학자 황정덕씨는 증언했다. 벚꽃이 부활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영향력 있는 일본인, 일본 기업과 단체가 재일교포와 함께 대거 묘목 기증에 나섰다. 벚꽃 묘목은 배로, 비행기로 다시 현해탄을 건너왔다. 진해의 벚꽃이 그렇게 부활했고 국회 주변 벚꽃길도 같은 경로로 조성됐다.

오해 마시라. 벚꽃에 시비를 걸자는 게 결코 아니다. 일본인이 무슨 뜻으로 벚꽃 부활에 발벗고 나선 건지, 또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이를 받아 심은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수상하게도 묘목 기증이 시작되던 1960년대 일본은 신우익의 등장과 함께 과거 회귀 움직임이 가속화하던 시기다. 구로다 가쓰히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필자에게 “다른 곳은 몰라도 국회 주변은 신중히 생각했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인 눈에도 국회 벚꽃길은 자연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자연을 즐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와 별개로 벚꽃에 투영된 인간사의 부조리를 경계할 뿐이다. 일본은 지난해 봄 미국 뉴저지의 위안부 추모비 철거를 요구하면서 벚나무 기증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아름답지만 안타깝게도 벚꽃엔 역사의 먼지가 그대로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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