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만 따지면 순수예술 설 땅 없어 문과 출신인 필자는 고등학생 때 수학이 재미없었다. 당시 시인이셨던 국어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그리 싫던 수학 공부가 요즘 다시 하고 싶다”던 말씀도 그래서 당연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수학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 수학 원리를 잘 이해하는 것이 사람과 사회와 인류 문명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용할 뿐만 아니라 필수적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숫자의 세계는 모든 학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자연과 사람, 그리고 신의 영역까지 설명하는 원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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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교수·예술경영학 |
통계학의 발달로 몇 천 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와 분석도 거의 오차 없이 정확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직접선거도 여론조사로 대치되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예상해 본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문화정책 수립의 기본 자료로서 각종 통계를 활용하고 있고, 인터넷을 통해 문화통계 포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숫자로 관리될 때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정책수립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숫자문화가 예술과 만났을 때 종종 갈등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다. 예술은 추상적인 영역을 다루며 상상력이 바탕이 된다. 결과물도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 판단에 따라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숫자로 측정하고 표현하기에 적절하지 않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더욱이 상업성이 없는 순수예술은 자생력이 없어 태생적으로 ‘시장실패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생산기술의 발달로 기술 집약적인 상품의 원가는 내려갈 수 있지만 노동집약적인 공연예술의 제작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적자를 메우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일반 재화나 서비스와 달리 시장경제 원리에 맡기기 어려운 예술상품의 이러한 공공재적 특성 때문에 정부나 공공의 지원이 필요한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예술 지원의 성과를 측정하고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숫자로 나타낼 수 있는 계량적인 방법이 사용된다. 관람객 수, 유료관객 수, 기관 재정자립도 등이 평가 기준이 되는데 여기에 집착하게 되면 순수예술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술성과 창의적 정신보다는 숫자로 우열을 가리고 무관심한 관객 동원을 위해 초대권이 남발되는 공연문화가 확산된다. 이렇다 보니 지역의 연극축제를 평가할 때도 시와 의회에서 공공연하게 이런 말까지 나온다. “열흘간 연극축제를 하는 것보다 걸 그룹 한 번 공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걸 그룹이 공연을 하면 구름 인파가 몰려들어 환호를 하니 틀린 말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예술기관의 운영 성과를 높인다며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출신을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는데 숫자로 표현되는 평가지수는 올라갔을지 모르지만 예술은 오히려 위축되고 조직의 갈등만 키웠다. 숫자 문화를 잘못 적용한 처방전으로 인해 생긴 결과다.
사람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했다. 예술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 만남을 주선할 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예술의 가치가 1등 지상주의와 양적 성과주의의 숫자 문화에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삶의 의미와 정신을 빛나게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교수·예술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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