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광장] 동네빵집의 진실

관련이슈 세계광장

입력 : 2012-10-18 20:11:24 수정 : 2012-10-18 20:11: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사회 모두가 잘사는 게 경제민주화
대기업 때려잡기식 개혁은 안 된다
기자가 어린 시절 성장한 동네는 서울의 영등포시장이란 곳이다. 이곳에는 시장을 통틀어 빵집이 단 하나 있었다. 개인이 장사하는 빵집인데 어렸을 때도 빵이 그다지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빵집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으니 거기서 빵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커가면서 맛있는 빵집의 케이크를 접한 후로는 그 빵집의 수준을 알게 됐고 그 후로 발길을 끊었다. 그 빵집은 얼마 전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바뀌었다. 가족들 얘기로는 빵 맛이 없다 보니 손님이 계속 줄어 결국은 문을 닫았다고 한다.

최현태 경제부 차장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로 시끄럽다. 대선 후보들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재벌을 손보겠다며 경쟁적으로 재벌개혁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권이 문제 삼는 대표적인 사례가 대기업의 ‘동네 빵집’ 진출이다. 제빵 분야 프랜차이즈 가맹점 중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와 CJ그룹의 ‘뚜레쥬르’ 브랜드 점포가 전체의 69%가 넘는다는 점을 들어 대기업이 동네 빵집을 몰아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동네 빵집 논란에서 놓친 것이 있다. 소비자는 더 맛있는 빵을 먹을 권리가 있고 동네 빵집 사장은 좀 더 맛있는 빵을 내놓기 위해 프랜차이즈 빵집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프랜차이즈 빵집 사장은 누구인가. 대기업? 틀렸다. ‘동네 아저씨’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제빵 분야 프랜차이즈 전체 가맹점은 5883곳이다. 임대료가 비싼 명동이나 강남 등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부 지역 빵집만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지 거의 다 개인사업자다. 은퇴 자금으로 빵집을 창업하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고 일정한 맛을 제공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선택한 것이다. 기존에 동네 빵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프랜차이즈로 갈아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기업 브랜드이건 아니건 빵집 사장님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손님은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으면 그걸로 족하다.

물론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맹점에 과도한 인테리어 비용을 부과하거나 특정 인테리어 업체를 강요하는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는 관련 기관에서 강력하게 제재를 가해 빵집 사장님들을 보호해 주면 된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공공기관을 만들어 놓고 국민은 세금을 낸다. 이런 것들을 꼬투리 잡아 대기업에 빵집 철수를 종용한다면 이는 대기업 브랜드의 ‘우산’을 이용해 생계를 이어가는 빵집 사장님은 안중에도 없는 처사다.

사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도 지금은 대기업이지만 1945년 ‘상미당’이라는 작은 동네 빵집에서 시작해 65년이 넘도록 빵 한 분야에만 매진해 성장한 대표적인 빵 전문기업이다. 그런데도 도매금으로 싸잡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713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의 본격적인 은퇴가 시작됐다. 베이비부머 노후 문제의 해법 중 하나가 프랜차이즈 산업 육성이다. 프랜차이즈는 창업 준비가 부족한 은퇴자들에게 사업 노하우와 인지도 높은 상표 사용권을 제공해 창업 실패율을 낮춰준다. 실제 국세청에 따르면 자영업의 폐업률이 84.3%인 데 반해 프랜차이즈 자영업의 폐업률은 25%에 그칠 정도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국내 프랜차이즈 산업 규모는 매출액 95조원(국내 GDP의 7.9%), 종사자수 124만명으로 국내 경제활동인구의 5.6% 정도여서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경제민주화는 정치권이 지금 쏟아내는 재벌개혁 공약처럼 거창한 게 아니다. 자영업자의 생계가 보장되고 대기업으로 크는 중소기업이 많이 나오며 계층 간 이동이 활발해진 경제구조가 바로 경제민주화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에 목을 매고 ‘선정적’인 대기업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오래전 유행한 두더지 게임처럼 마치 누가 더 크고 강한 몽둥이로 더 세고 빠르게 대기업을 때려 잡는지 혈안이 된 모습이다.

국내외 경기는 지금 살얼음판을 걷는 위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에서 3.6%로 하향 조정했다. 더구나 환율 급락의 악재까지 겹치면서 수출기업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도 30대 그룹은 올해 13만5000명을 새로 뽑고, 120조9000억원을 투자하며 매년 고용과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정치권이 대기업의 순기능을 무시하고 마치 범죄집단인 양 ‘마녀사냥’ 하다 초가삼간 다 태울까 걱정이다.

최현태 경제부 차장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