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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광장] 장르 폐쇄주의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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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4-05 21:02:10 수정 : 2012-04-05 21: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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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그림도 틀에 갇혀 있어선 안돼
非미술계인사 전시회 새로운 감동
최근 들어 미술계 밖 인사들의 전시가 늘어나고 있다. 가수 조영남과 영화배우 하정우에 이어 소설가 윤후명씨까지 합세했다. 하지만 미술계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그래봤자 아마추어가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다. 미술담당 기자들도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연히 취재 대상에서 이들은 열외됐다. 마음속으론 작품이 괜찮다 싶어도 애써 외면하기도 했다. 때론 연예계나 문단의 이야기라며 그쪽으로 밀었다. 

편완식 문화선임기자
이런 속내를 간파했는지 지난밤 인사동에서 만난 최석운 작가가 다짜고짜 “얼마 전에 끝난 윤후명 전시를 봤냐”고 다그쳤다. 못 봤다고 하자 대뜸 “용감하지 못한 자세입니다. 비겁한 거지요”라는 힐책이 날아왔다. 평소 이런저런 미술계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누는 사이지만 날선 추궁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술계 취재를 오래 했으니 이젠 미술판의 고정된 시각에서도 자유로워질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채근이었다. 그는 윤씨 그림에 대해 “작품과 삶이 일치되는 모습에서 진실의 힘마저 느껴진다”고 극찬했다. 무조건 평가절하하는 미술계 풍토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같은 얘기를 바로 당사자인 윤씨에게 전하자 쑥스러워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글 쓰는 사람은 ‘글 감옥’이란 족쇄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미술을 통해 그 제약에서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예전엔 예술인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교류를 했다”며 명동 시절을 회고했다.

요즘 현실은 시인과 소설가도 서로 모르고 지내는 시대다. 윤씨는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예술분야에서도 융합, 통섭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각자의 것에서 ‘우리 것,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백남준의 작품 속엔 시인 이상의 시세계가 융합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팝도 예외가 아니다.

글이나 그림이나 장르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 윤씨의 지론이다. 가령 사랑이 글자로서의 사랑, 빛으로서의 사랑으로 딱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예술의 형태 속에서 추구돼야 한다. 이상일 수는 있어도 글자의 획과 그림의 붓질이 다 동원돼야 하나의 삶이 이뤄질 수 있다.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전체의 모습을 보지 않으면 우리 삶이 빈곤해질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 그것이 예술의 본령이다. 윤씨는 “시 작업을 하다가 소설을 썼을 때는 다른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지금 그림으로 넘어올 때도 또 다른 차원에서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며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확인할 수 있어서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 내지 자아의 확대와 같았다”고 털어 놓았다. 그도 이전엔 그림은 ‘남의 것’이나 ‘다른 세계’로 여겼다.

문화계에서도 작게나마 융합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이 마련하는 ‘탄생 100주년 문인 기념문화제’에 화가들을 참여시킨 것이다. 그동안 이상 피천득 박태원 등 문인들의 작품을 소재로, 미술 전시회가 열렸다. 민정기 김선두 한생곤 최석운 등 많은 화가들이 기념문화제 전시에 참여했다.

오는 9월에는 시인 백석 탄생100주년을 맞아 문학 그림전이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열린다. 김덕기 김선두 서용선 오원배 박영근 이인 임만혁 전영근 최석운 황주리 등 화가들이 동참할 예정이다. 화가들에겐 스토리텔링이 강화되고, 대중과의 소통 채널이 돼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가들도 미술계 밖 인사들의 미술전시회에 대해 예전같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여느 작가의 뜨거운 가슴 못지않게 진정성을 지녔다면, 이제 다가가 좋은 작품에 대해 좋다고 열광해 보자. 칭찬(인정)에 인색하면 좋은 예술가가 나오지 않는다.

미술인이 영화는 물론 연극 등 무대예술에도 동참해 보라. 예술계의 크로스오버가 생각지도 못했던 시너지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진정성만 있다면 예술계에 활력소가 된다. 장르 폐쇄주의를 이제는 넘어서야 할 때다. 시인과 소설가와 화가가 자주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편완식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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