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량 늘리고 유류세 인하해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이다. 두바이유 현물기준으로 지난해 12월 배럴당 평균 105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3월 현재 120달러를 넘었다. 문제는 이란, 시리아, 이라크 등 중동정세의 불안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란의 핵개발문제가 외교적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전쟁유발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현 추세로 나갈 경우 원유공급의 차질로 인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자 세계경제가 다시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최근 세계경제는 천신만고 끝에 금융위기를 이겨내고 전반적인 경기회복세에 들어섰다. 여기에 뜻하지 않게 유가상승의 포화가 터지자 인플레이션의 회오리에 휩싸여 성장동력을 잃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에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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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고려대 교수(전총장)·경영학 |
우선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하락세를 보인 것은 농축산물가격의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농축산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올라 올 2월에는 수치상 가격이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숫자가 석유 등 다른 제품의 가격상승을 상쇄하고 소비자물가가 떨어진 것처럼 계산된 것이다. 올 2월 농축산물가격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대부분 품목의 가격이 예년에 비해 높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전체적으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예년 이상으로 높은 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의 하락세는 서민들의 구매력감소도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서민들의 생활고가 크다. 특히 일부 서민은 생활비를 조달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빚을 얻는 부채의 덫에 걸려 있다. 이에 따라 가계소비의 수요가 줄어 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가상승률 하락이 공급 확대나 생산비 절감이 아니라 서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소비자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서민이 체감하는 고통은 현격히 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900조원을 넘었다. 가구당 평균부채가 5000만원이나 된다. 여기에 지난 1년 동안 회사의 도산과 구조조정 등으로 직장을 잃은 상시 근로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이런 상태에서 체감물가의 상승은 서민들에게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다.
현 상황에서 국제유가의 급등은 불안한 경제에 불을 지르는 격이다.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정부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불안을 선제적으로 막아야 한다. 즉 원유수입원의 다변화를 서두르고 비축량을 늘려 공급의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유류세 인하와 유통구조 개혁을 통해 석유제품의 가격상승을 강력히 억제해야 한다. 여기에 원화절상과 기준금리 인상 등 물가안정을 유도하는 금융정책도 펴야 한다. 무엇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다시 일으켜 서민경제를 살리는 갖가지 정책을 집중적으로 펴야 한다. 그리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가계부도를 막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물가상승률이 다소 낮아진 것을 경제가 안정기조를 회복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국제유가의 급등세가 계속되면 언제 스태그플레이션의 압박에 굴복할지 모르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밖으로 물가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고 안으로 경제를 살리는 입체적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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