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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김 위원장, 서왕모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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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2-20 01:45:08 수정 : 2011-12-20 01: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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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사느냐가 중요하다
티끌과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
한무제(漢武帝)가 사모한 여신이 있다. 서왕모(西王母)다. 한무제가 신선 되기를 추구한 일화를 그린 전기체 소설 ‘한무제내전’은 서왕모의 열렬한 팬으로 한무제를 묘사한다. 한 개만 먹어도 1만8000세의 수명이 보장되는 선도(仙桃)를 서왕모에게서 받았다는 풍설도 전한다. 서왕모가 한나라 때 영생과 불사를 관장하는 여신으로 숭배된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서왕모가 처음부터 매력적인 여신이었던 것은 아니다. ‘산해경’에는 반인반수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는 ‘이야기 동양신화’에서 이렇게 형용한다. “얼핏 보면 사람 같기는 한데 표범의 꼬리에 호랑이 이빨을 했고 쑥대처럼 헝클어진 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서왕모는 서쪽에서 살아 서왕모다. 해가 지는 서쪽은 동양 방위로는 어둠과 죽음의 땅이다. 여신 형상은 기괴할 수밖에 없다. 한무제도 밤길에 봤다면 기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반전은 훗날 이뤄진다. 서왕모가 죽음을 극복하는 힘, 즉 영생과 불사의 능력을 겸비한 존재로 간주된 것이다. 용모도 아름답게 분칠됐다. 후대 권력자들이 ‘서왕모 팬클럽’에 줄줄이 가입한 이유다.

불사약을 탐하고 신선술에 탐닉한 권력자는 한무제만이 아니다. 진시황도 유명하다. 주나라 목왕은 서왕모와 연애를 했다는 설화까지 남겼다. 한때 진시황, 한무제의 어리석음을 탓했던 당태종도 말년에는 단약(丹藥)에 빠져 자기 무덤을 팠다.

무병장수는 인간의 보편적 소망이다. 근대 이후의 풍속도도 마찬가지다. 웃지 못할 코미디가 많다. 19세기 프랑스국립대 생리학 교수 브라운 씨카르는 신경계, 신진대사 연구에 기여했지만 명예스럽게 기억되지 않는다. 1889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기니피그와 개의 고환을 으깬 체액을 주입하면 회춘이 가능하다고 보고해 망신을 샀기 때문이다.

씨카르의 후예는 지금도 많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인사들도 이런 줄에 선다. ‘가상현실’이란 용어를 만든 컴퓨터공학자 제이런 러니어가 대표적이다. “인간은 거의 죽지 않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고 단언한다. 자연과학을 독학해 유수 저널에 논문을 다수 발표한 오브리 드 그레이라는 인물도 있다. 1000년 이상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미국 생명공학업체인 ‘휴먼게놈사이언스’ CEO 윌리엄 해슬틴은 “우리 세대가 영생 가능한 지도를 그릴 첫 세대”라고 호언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120세 안팎을 한계수명으로 본다. 과도한 장수 욕심에 쐐기를 박는 이도 있다.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미 예일대 의대 교수 셔윈 눌랜드가 그렇다. 그는 ‘사람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The Art of Aging)에서 “생물의학자의 임무는 자연이 정한 한계수명을 뛰어넘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게 아니라 삶을 개선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어떤 삶을 사느냐가 훨씬 중요하다는 의미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7일 급사했다. 씨카르의 후예들이 뭐라 하든 인간의 삶은 덧없다는 데 한 표를 던지게 된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티끌과 같다.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부음 앞에서는 으레 답 없는 질문으로 가슴이 잠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탄식만 나온다. 한반도 운명을 바꿀 열쇠를 쥔 그 손으로 왜 개방과 평화통일의 문을 활짝 여는 대신 핵 놀음과 무력 불장난을 일삼은 것일까. 왜 서울 답방 약속을 거부한 것일까. 왜 북한 주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것일까. 참으로 무책임한 삶이고, 무책임한 죽음 아닌가.

김 위원장이 마주할 여신이 있다. 서왕모다. 어둠과 죽음의 형상으로 다가설 것이다. 서왕모는 형벌을 관장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임자를 만나는 셈이다. 한반도에서 뭔 일을 했느냐고 서왕모가 물으면 과연 어찌 답할까. 참으로 안쓰러운 일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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