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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시월의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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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04 23:11:54 수정 : 2011-10-04 23: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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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시즌 되면 열렬한 구애
수상도 좋지만 한국문학 내실 다져야
문학담당 기자로 오랜 세월을 보냈어도 매년 10월로 접어들면 가슴이 답답하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0월 둘째 주 목요일 저녁 8시면, 외신의 1보를 받자마자 수상자 자료를 챙기고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초긴장 상태로 대기하곤 했다. 그나마 외신에서 거론됐던 유력 인물 중 하나면 미리 준비한 자료로 짧은 마감 시간 안에 기사를 작성할 수 있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엉뚱한 인물이 튀어나와 망연자실한 적도 많았다.

조용호 문화부장
여기에다 2005년부터는 한국의 고은 시인이 유력 수상후보로 매년 외신에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부담은 배가됐다. 고 시인이 처음 거론되던 무렵만 해도 모든 매체들은 금방 그가 수상하기라도 할 것처럼 들떴고, 시인의 경기 안성 장미골 집 앞에는 방송국 중계차들이 모여들고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먼 나라 낯선 수상자의 이름이 발표되는 순간, 시인의 집 앞은 파장의 주막처럼 썰렁해지곤 했다. 정작 시인이 내면에서 겪었을 당혹스러움을 생각하면 더 쓸쓸하다. 시인은 매년 이 시점이면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해버린다.

올해도 내일(6일) 저녁이면 이 같은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되풀이될 것 같다. 다시 외신에서 고은 시인을 어김없이 거론하고 있고, 올해는 한국계 재미소설가 이창래(46)까지 영국 도박사이트 베팅 순위에 올라 눈길을 끈다. ‘네이티브 스피커’를 비롯해 최근작인 ‘항복자’까지 빼어난 영어 문장으로 고급문학의 품격을 과시해 퓰리처상 후보로도 올랐던 이창래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대 수상자들의 연령이나 오래 묵힌 뒤 꺼내드는 한림원의 선택 방식으로 보자면 그는 이제 출발선에 선 것에 불과하다.

사실 한국만큼 노벨문학상을 짝사랑하는 곳도 없다. 파주 북소리축제에서는 스웨덴도 벌이지 않았던 노벨문학상 110주년 특별전까지 세계 최초로 열고 있다. 이 행사에선 헤밍웨이가 1916년 중학교 시절 사용한 노트 등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107명의 친필원고와 편지, 육성음반 등 모두 1000여점의 자료가 공개된다. 노벨문학상 110년 역사에 동양에서 수상자가 4명이나 배출됐지만, 아직까지 한국인의 이름은 단 한 명도 등재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두 명이나 수상자 명단에 올렸고, 중국에서도 수상자가 나온 지 오래다.

한국인의 승부욕이나 자부심으로 보건대 자존심 상할 만한 일임은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110년 동안 이 상이 배출한 수상자 중 구미문학인들이 70% 이상을 차지해 노벨문학상은 서구문학 혹은 서구의 가치관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패권적인 도구의 하나라는 비판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안톤 체호프,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세계적인 문호들도 이 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개최하고 다시 동계올림픽까지 유치한 이 나라에서, 특히 예로부터 문사철을 떠받들어온 한국사회에서 문학으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개운치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체계적인 번역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문학번역원도 만들어 올해 10주년을 맞았고, 대산문화재단 같은 민간재단에서도 번역 사업을 지원하면서 2000년대 들어 한국문학의 해외 소개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실이다. 소설가 신경숙의 작품이 미국 유수의 출판사에서 출간돼 미국은 물론 유럽 중동까지 얼굴을 알린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뒤돌아볼 상황이 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좋아하고, 자랑하기 좋아하는 성정 이면에 얼마나 내실을 다지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노벨문학상 시즌이면 문학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평상시에 얼마나 문학을 가까이 접하면서 과시용이나 자만용이 아닌 내 안의 양식으로 끼고 사는지 통절하게 반성해볼 일이다. 내 안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문학이라면, 책이라면, 기실 노벨문학상을 받고 안 받고 따위는 그야말로 ‘남’의 일이지 않겠는가. 오늘의 한국문학이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은 작가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

조용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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