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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낙인칼럼] 브라질 민주화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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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16 18:55:47 수정 : 2011-01-16 18:5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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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지도력 이은 호세프에 큰 기대
‘부패 보수 무능 진보’ 한국현실 암담
세계적으로 새롭게 주목할 국가로 브릭스(BRICs) 즉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꼽아온 지 오래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이었다. 반면에 인도와 브라질은 자본주의 체제지만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채 그저 덩치 큰 나라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특히 브라질은 최고 후진국가로 인식되었다. 언어부터 중남미에서도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식민지 모국인 포르투갈의 위상 저하로 이를 더욱 부채질해왔다. 식민국가에서 1822년 독립한 이후 1899년에 공화정체를 확립했다. 세계에서 다섯째로 광대한 국토와 1억9000만 인구에 거대한 자원부국이다. 외견상으로는 그야말로 어느 하나 강대국의 위상을 갖추지 못한 부분이 없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과 더불어 경제적 침체로 인해 못살고 놀기 좋아하는 나라쯤으로 여겨왔다. 세계인에게 각인된 브라질은 세계 최대 수량의 아마존강 밀림, 넘치는 열정의 삼바 축제, 화려한 기술축구 강국 정도다. 그런데 그 브라질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도약의 길로 나아간다.

권위주의적이고 부패한 우파 정권을 청산하고 2003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등장은 새로운 브라질을 예고했다. 초등학교 중퇴에 공장 노동자 출신인 좌파 운동가가 대통령이 되면서 세계는 우려의 눈빛을 보냈다. 더구나 당시 브라질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국가였다. 룰라 정권은 비록 좌파정권이지만 실용주의적 노선을 채택하고 소통과 상생의 리더십을 발휘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확고히 다졌다. 생산과 복지의 조화를 이룬 경제정책으로 구제금융 위기를 극복했다. 민주화와 경제 발전이라는 쌍두마차를 동시에 견인해 냈다. 그의 정치적 성공은 8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 3일 전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90%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1일 ‘올레(Ole), 올레’라는 국민적 환성 속에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가 취임함으로써 새 역사가 시작됐다. 불가리아 이민 가정 출신, 오랜 반독재 투쟁에 따른 고문과 투옥, 두 번의 이혼이라는 험난한 인생역정을 걸어온 그녀의 “나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국가를 꿈꾸면서 내 젊음을 보냈다. 하지만 후회도, 분노도, 원한도 없다”라는 취임 연설은 국민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브라질은 이미 세계 8대 경제대국에 진입했고, 연 5%대의 고도성장을 통해서 조만간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2014년 월드컵, 2016년 올림픽을 계기로 새로운 브라질을 전 세계에 알리고 힘찬 도약을 준비한다. 브라질뿐만 아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오랜 좌우 갈등과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우리 외교부는 올해에야 브릭스 국가를 특수지 근무수당이 지불되는 험지 공관에서 제외하고 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우리가 제3세계 국가로 치부하면서 얕잡아보고 관심도 가지지 않던 나라들의 돌진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 스스로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한 모범적인 개발도상국가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사이에 이들의 새로운 발전상은 위협적이다. 산업화를 한 발 앞서 성공적으로 작동시켰다지만 우리는 이들 국가에 비하면 자원빈국이다. 인구밀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그야말로 사람만이 자원인 국가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정치적 민주화도, 내실을 다지지 못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국이다. 룰라의 성공적인 정치역정은 우리에게 배움의 장을 제공한다. 민주화 이후 민주투사들이나 산업화 세대의 집권에서도 권위주의 시대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정권의 부패와 무사안일, 진보정권의 무능과 분열정치는 결국 헌정체제의 안정 속에서도 아직 민주주의의 성공적 정착은 요원함을 보여준다. 지구의 반대편 저 끝에 위치한 브라질을 새삼 부러워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애처롭기까지 하다.

서울대 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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