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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 컴퓨터 공학자가 된 ‘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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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24 19:12:34 수정 : 2010-03-24 19: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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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공계 진출 롤 모델 없어
잠재력 가진 젊은이 들어와야
가끔 장난감 가게에 간다. 내 아이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됐으니 자식들 줄 장난감을 사러 가는 것도 아니고, 아직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 않았으니 손자 손녀 줄 것을 사러 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장난감 가게에 가면 뭔가 모르게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세상을 잠시 벗어나 다른 세계로의 여행, 일종의 가상세계라고나 할까. 이 같은 황홀감은 장난감 가게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원자폭탄 이외에는 무엇이든지 만든다는 청계천 골목에서도, 미로처럼 얽혀져 있는 옛 세운상가 전자 부품점이나 수리점에서도 뭔지 모르지만 나를 흥분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
우리 집에는 자식들이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아직 그대로 보관돼 있다. 두 아이 모두 딸인지라 로봇이나 무기 등 공격적이거나 전투적인 것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장난감이 주류를 이룬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은 인형인데 단일 캐릭터로는 바비 인형이 단연 수량으로 압도한다. 언젠가 신문에서 읽은 기억으론 미국 여자 어린이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 소유하는 바비 인형 개수가 10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바비 인형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여성 문화에 끼친 영향은 엄청날 것이다.

바비 인형이 처음 출시된 지 올해로 51년이 흘렀다 한다. 공식적으로 바비는 51세가 되는 셈이다. 51년간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 여러 테마의 바비가 출시돼 왔다. 그러다 보니 바비의 직업도 계속 바뀌어 왔다. 우리 집에도 발레리나 바비, 의사 바비, 심지어 군인 바비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장난감 회사인 마텔사는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바비가 갖기를 원하는 직업을 조사했는데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다. 1순위는 TV 여성 앵커로 그리 놀라운 결과가 아니었으나 2위는 연예인도, 스포츠맨도, 의사도 아닌 컴퓨터 공학자가 차지했다.

이에 고무돼 제조사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엔지니어 바비를 출시했다. 컴퓨터 공학자 바비는 엔지니어답게 안경을 쓰고 있고, 블루투스 무선 이어링과 노트북 컴퓨터, 그리고 0과 1로 디자인된 티셔츠를 입고 있다.

바비 인형 제조사는 매출을 올리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당시 시대상과 가치관을 반영한 다양한 직업군을 테마로 인형을 디자인해 왔겠으나 이것이 어린 소녀들에게는 하나의 롤 모델이 돼 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과학이나 공학은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며 해봤자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특히 여성에게는 적합한 분야가 아니며, 선천적으로 불리하다는 생각도 강하다.

컴퓨터 교육이 한창 유행할 때 남학생에게는 프로그래밍을 가르치고 여학생에게는 워드프로세싱과 스프레드시트 사용법을 가르쳤다. 워드프로세싱이 무엇인가. 디지털 시대의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스프레드시트 교육은 주산에 부기 작성법을 합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으나 적지 않은 기간 남학생에게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교육을, 여학생에게는 창의성을 억누르는 교육을 해 온 셈이다.

필자는 진보주의자도, 여권신장론자도 아니다. 다만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렇게 멋진 이공학의 세계에 잠재력을 가진 많은 젊은이가 들어오길 바랄 뿐이다.

젊은 인구가 줄어가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더 많은 여성 인력이 이공계로 진출하길 바라고,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대표적인 롤 모델을 적극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와 같은 실재 인물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가 강한 온라인 게임을 활용한 게임 캐릭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원광연 KAIST 문화기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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