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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대한민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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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10 20:29:45 수정 : 2009-04-10 20: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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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초극. 한민족 반만년의 역사를 담는 상징어이다. 우리만큼 이민족의 침략에 시달린 민족도 드물 것이다. ‘아리랑’을 비롯한 대부분 민요는 가락이 구슬프다. 그러면서 체념하지 않고 경쾌한 분위기도 적잖다. 이별과 사랑의 정한을 담은 정선 아리랑이 전자라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로 시작하는 밀양아리랑은 후자다. 진도 아리랑은 중간쯤 된다고 할까.

민족 수난사 중 처참함으로 치면 36년간 일제 식민통치를 꼽을 수 있다. 악착스러운 이리가 양을 물고 놓아주지 않으려고 했던 시기였다. 그 이빨은 우리 몸 안 깊숙이, 발톱은 등뼈 마디마디에 박혔었다. 수탈에 이어 급기야 성(姓)을 갈고 말과 글을 없애려 했잖은가. 민족혼의 말살 시도였다. 그랬기에 한때 지사라던 사람도 “일제 통치가 영원할 줄 알았다”며 친일로 돌아섰다. 심지어 종교지도자 중엔 “천황을 섬기는 게 하느님의 뜻”이라며 궤변을 서슴지 않았다.

어두운 동천(冬天)의 장막은 걷혔다. 줄기찬 독립운동의 결과다. 외세의 덕분이라는 주장도 만만찮지만 독립운동의 힘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 민족은 1894년 청일전쟁부터는 반식민지로, 1904년 러일전쟁 이후는 준식민지로 일본에 편입됐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중국 러시아 미주 등 해외 독립운동의 기지 개척이 확대됐다. 그 뜻 위에 3·1운동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민족대단결이었다. 그 열기가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국땅에서의 풍찬노숙, 고통이 컸다. 그러나 조국광복의 단심(丹心)은 갈수록 빛을 발했다. 선열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는 ‘국력 10위권’의 삶을 누리고 있다.

상하이 임정 수립의 중요한 의미는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을 제정·공포한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임정 수립 기념일 지정과 관련해 학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임정 수립일이 현행 4월 13일이 아니라 이틀 전인 11일 즉 오늘이라는 것이다. 기준이 헌장 제정일이냐, 선포일이냐의 견해차다. 광복회 등은 임정 선포일인 13일로 기울고 있다. 중요한 건 공의(公義)의 길을 걸은 순국선열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발전시키느냐일 터이다.

황종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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