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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도’ 넘어선 인터넷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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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30 21:22:00 수정 : 2008-10-30 2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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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 소설가
외국에서 몇 달 만에 귀국한 동생이 가족들 안부 다음으로 최진실씨 죽음 이야기를 꺼냈다. 인터넷을 통해 그의 죽음과 이런저런 정황들을 다 알 수 있었는데 막상 주위에는 그 충격을 같이 이야기할 한국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더라는 것이다. 한국과는 다른 기후나 식성, 민족성 등은 다 참겠는데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것에 그제야 타국에 있다는 것을 절실히 실감했단다. 흥분한 동생과는 달리 우리는 더 이상 그 이야기에 맞장구치고 싶지 않았다. 충격이 컸던 만큼 빨리 잊고 싶기도 했지만 한동안 그 이야기만 나눴던 우리에게 그 화제는 더운 나라에서 동생이 입고 온 짧은 여름옷 같았다.

파울루 코엘류는 여행법을 소개하면서 여행은 혼자서 하라고 권한다. 결혼했다면 배우자와 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단체로 몰려다니는 여행은 여행의 시늉에 불과하다고, 모국어를 사용하고, 인솔자가 하라는 것만 하고, 방문한 나라보다 함께 간 사람들의 이러쿵저러쿵 하는 이야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단체 여행을 다녀온 한 친구는 여행에 대해 묻자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다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누군가 불쑥 그 친구에게 나이를 물었다고 한다. 나이를 알려주면 결혼했냐고 물을 것이고 아직 미혼이라고 하면 왜 안 했느냐부터 시작해서 내가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까지 말꼬리가 이어질 것이 빤해서 그냥 “그냥 좀 많아요”라고 짧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행 내내 틈만 나면 나이를 캐묻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우리 딸이 서른을 넘겼는데 결혼을 안 해 큰일이야…그런데 우리 딸보다 많아?” 방법도 다양했다. 슬슬 오기가 발동해서 끝내 답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가 잠깐 일행에서 벗어날 때마다 남은 여행객들이 이 친구의 나이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더란다. 그러니 여행지의 풍경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었다. 귀국해서 공항에서 헤어질 때였다. 재미있었다고 기회가 되면 다음 여행도 같이하자고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 말고 누군가 또 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야?” 둘러보니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 친구의 입에서 떨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더라고. 우격다짐 없이 조용조용,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그 시선들이 미역처럼 끈끈하게 뒤통수에 들러붙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뿐일까. 언제부턴가 자료를 검색하거나 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짜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초기 화면의 뉴스들이 연예가 소식 일색인 데다 그 내용은 은밀하고 사적인 부분들에서 진위가 파악되지 않은 흥미 본위의 기사들까지 뒤섞여 있다. 제목만 보고 곧잘 ‘낚이기도’ 했다.

등수놀이나 낚시놀이, 도배놀이라는 용어는 요즘 댓글의 특성을 나타내주는 말들이다. 하지만 기사 역시 이 특성을 따라간 지 오래다. ‘낚으려는’ 의도로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구투성이이다. 사실 보도도 자극적이어서 사건 현장에 대한 지나친 묘사와 사진들이 흥미 본위로 흐른다. 안양 초등생 유괴 사건과 안재환씨와 최진실씨의 사망 사고에서 엿볼 수 있었다.

문득문득 어릴 적 신문이나 잡지에서 훔쳐보던 가십 기사가 그리워진다. 살짝살짝 드러나던 스타들의 비밀스러운 사생활,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호기심은 충분히 만족될 수 있었다. 역으로 인기를 위해 몇몇 연예인들이 가십을 이용하기도 했다.

아직도 최진실씨와 연관된 기사들이 꼬리를 문다. 그만큼 그가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인기 연예인이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하지만 어제, 오늘 뜬 기사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친권과 재산권 다툼에 대한 기사들과 막말에 가까운 댓글들. 친권 반대 1만명 서명 운동이라는 부분에서는 아연실색해지고 만다. 수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는 생각이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이러쿵저러쿵 하느라 정작 중요한 풍경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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