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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 칼럼] 지역감정 아직도 뿌리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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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16 16:31:42 수정 : 2010-07-16 16: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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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결혼에 관한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매우 당혹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혼 상대방의 희망지역을 적은 난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몰린 서울·경기를 희망지역으로 표기한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하게 느껴졌으나 비희망지역 1순위로 전라도를 꼽은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자그마치 50%가 넘었다. 결혼에서조차 이렇게 지역색이 뚜렷하다니! 뿌리 깊은 우리 사회의 지역 갈등과 편견에 새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 28돌을 맞는 날이다. 광주를 붉게 물들인 그날은 1996년까지 ‘광주사태’였다. 97년이 되어서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20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그 명칭이 바뀌었다고 해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까지 바뀐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여전히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과격한 사람’이라는 것이 일반인의 인식이다.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TV프로와 영화 속에서 고향과 우정에 대한 상징을 이야기할 때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주를 이루었으며, 전라도 사투리 사용은 대부분 무식함과 살벌한 폭력을 상징하는 조폭이 등장할 때였다. 이렇게 대중문화 속에서 아직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편견의 고리가 젊은층의 결혼관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가 극장가에서 맹위를 떨칠 무렵,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전라도 남자와 경상도 여자, 전라도 여자와 경상도 남자가 만나는 이벤트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이벤트에 참여한 회원 대부분이 눈시울을 붉히며 영화에 집중했고, 특히 광주 출신 남녀 회원들은 많은 공감과 눈물을 보였던 게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천만명의 국민이 이 영화를 보고 절망과 감동을 함께 느끼면서 호흡했지만, 이것으로 분열이 사라지지는 않은 듯싶다. 이성적 이해와 감성적 수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실질적인 교류가 더해져야 진정한 화합이 피어나고 편견이 자연스레 없어질 것이다.

전라도 광주와 경상도 대구를 잇는 88올림픽고속도로가 있다. 5공 때인 1984년 영호남 간 인적 물적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망치사율 1위의 고속도로, 명절 때에도 밀리지 않는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도 없는 편도 1차선의 유일한 고속도로…. 이것이 오늘날 이 도로의 현주소다. 오래전부터 확장 공사 요청이 있었으나 계획만 잡을 뿐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도로 통행량이 적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길은 있으되 오가는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물류를 잇는 교통망뿐만이 아니다. 사람을 잇는 혼인은 어떠한가.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 배우자를,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 배우자를 부모님께 소개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불행히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교육받고, 또 사회생활을 통해 왜곡된 인식이 형성되었기에 아예 만남과 교제의 기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이 안타깝고 서글프기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내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또 하나 발견했다는 생각에서다. 우리 젊은이들부터 이런 동서의 벽을 마음 속에서 허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이 되는 데는 꼬박 20년이 걸렸다. 안타깝게도 영호남의 젊은이들이 아무 장애나 편견 없이 서로 만나 결혼하기에는 좀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시간은 훨씬 짧아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은 현명하니까.

손숙 연극인·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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