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사회적 조화 함께 실현돼야 ‘문화 융성’이라는 새 정부의 슬로건이 주목을 끌고 있다. 문화에 대한 정치적 관심과 배려는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우리 문화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 요건은 아니다. 문화를 정부가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사람의 요구와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의 관심과 이해가 모두 다르고 그 가치 기준이 다른 것처럼 문화의 양상도 달라지며 그 방향도 일정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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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문학평론가 |
문화란 인간 생활양식의 총체라고 한다. 문화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에 얽매여 고정돼 있지 않으며, 변화하는 시대와 인간의 삶에 따라 함께 변화한다.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며, 문화의 자율성이라는 것도 바로 여기서 연유한다. 문화는 개인적인 욕구에서부터 사회적 질서에 대한 신념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의 가치와 규범을 드러내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기능을 지닌다. 인간은 어느 시대에서나 그 시대의 문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위치를 규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한다. 문화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성립되며, 문화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규정한다. 문화는 결국 모든 사회 현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사회의 역사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는 사실적인 과정과 인간의 평가가 겹쳐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적 다양성과 그 조화를 언제나 강조했다. 분열된 의식으로 인해 조작된 문화의 분열도 우리는 체험했고, 이념의 양극화 현상에 의해 빚어진 문화의 갈등도 겪은 바 있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진정한 문화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의 지향은 그 주체가 요구하고 있는 삶의 가치와도 통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개방적인 국제 질서 속에서 다원화된 지식정보 사회로의 발전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각성이 요구된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속에서 겪어야 했던 모순과 갈등을 벗어나 삶의 가치를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질적 향상을 꾀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역동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두고 문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문화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과 문화적 욕구가 늘어나면서 문화는 삶의 부차적인 영역이 아니라 중심 영역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 발전의 모든 과정에서 문화와의 상호 연관성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물질적인 발전의 단계를 넘어서서 성숙된 시민사회를 확립하는 데도 문화의 발전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문화의 시대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과 그 조화가 실현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문화 융성이라는 슬로건도 이러한 문화의 시대를 창조할 수 있는 실천적 의미를 지니게 될 때 그 진정한 가치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권영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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