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화산책] 예술과 라이벌 그리고 승화

관련이슈 문화산책

입력 : 2012-11-16 20:47:20 수정 : 2012-11-16 20:47:2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숙명의 대결은 악연아닌 행운
정치·경제도 경쟁 속에서 발전
최근 ‘우리 춤 뿌리찾기’ 일환으로 행사를 치르면서 겪는 일상이 어쩌면 5년 전과 닮아 있을까.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다. 2007년 신무용가 조택원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작품을 재현, 복원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대 최고의 무용가가 출연하는 공연은 출연자끼리의 불꽃 튀는 경쟁으로 화제가 됐었다. 특히 한국을 대표하는 두 남성무용가의 최초 동시 출연은 숙명적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출연 작품에서 공연순서, 분장실 위치, 무대인사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경쟁심리는 자연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예술학
예술가에게 라이벌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다. 서로 견제하면서도 자극받고 훌륭한 작품을 잉태할 수 있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로마의 바로코 양식은 17세기 건축사의 두 거장 잔 로렌초 베르니니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의 피 말리는 경쟁 속에서 탄생된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천재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의 재능을 시기 질투하는 안토니오 살리에르의 경쟁구도는 피터 셰퍼의 ‘아마데우스’로 더 유명해졌다.

발레가 유럽에서 귀족예술로 꽃피울 수 있었던 저변에는 발레리나의 치열한 경쟁도 한몫했다. 19세기 낭만발레의 전성기를 이끈 마리 탈리오니와 파니 엘슬러의 경쟁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탈리오니는 청순가련형으로, 그리고 오스트리아 출신의 엘슬러는 관능적이며 정열적인 유형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세기의 라이벌로 한 시대를 이끈 두 사람이 한 번도 같은 무대에 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초 순수 무대 무용의 서막을 연 최승희, 조택원의 라이벌 관계도 주목거리다. 그들 역시 한 번도 무대에 함께 오른 적이 없다. 일본에 유학해 한 스승 밑에서 춤을 체득한 두 사람은 나란히 해외무대로 진출해 세계적 무용가로 우뚝 섰다. 두 사람이 근대 ‘모던 걸’, ‘모던 보이’로 한 시대를 풍미한 점도 이채롭다. 최승희가 영화배우·가수·광고모델로 이름을 날렸다면, 조택원은 영화·연극·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당대 최고의 대중 스타로 군림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만 있을 뿐 두 사람의 예술가적 행적은 이렇게 평행선을 달린다.

조택원과 함께 근대 신 무용의 삼인방으로 회자되는 배구자와 최승희의 라이벌 관계도 흥미롭다. 최승희와 조택원이 이성으로서의 경쟁이었다면, 배구자와 최승희는 동성 간의 라이벌이라는 점에서 한층 더 치열한 양상을 보인다. 두 사람의 대결은 무용 밖 장외에서 더 두드러진다.

천부적 재능을 지닌 배구자는 12세 때 일본 덴카쓰예술단에 입단해 일찍이 스타무용수 반열에 올랐다. 동양극장 설립을 주도하고 민족주의 성향의 작품 활동을 통해 입지를 굳히면서 자연히 최승희와 경쟁자적 위치에 서게 된다. 견제구를 먼저 날린 쪽은 배구자다. 그는 1936년 6월 포리돌을 통해 민요풍의 가요 두 곡을 음반 취입한다. 그러자 3개월 뒤 최승희도 컬럼비아를 통해 재즈풍의 가요를 취입하기에 이른다. 포리돌과 컬럼비아는 당시 세계음반시장을 주도하는 양대 산맥으로 치열한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 배구자를 내세운 포리돌을 상대로 컬럼비아가 최승희를 기용해 맞불을 놓은 셈이다.

예술가의 경쟁의식은 시공을 초월한다. 어디 경쟁의식이 예술가에게만 있으랴. 정치, 경제, 스포츠 등 세상만사 모든 일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발전하고 진화한다. 특히 예술가의 경쟁은 후대에 감동을 안겨주는 기념비적인 걸작이 탄생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건전한 라이벌 의식은 그래서 필요한 것 아닐까.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예술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강한나 '깜찍한 볼하트'
  • 강한나 '깜찍한 볼하트'
  • 지수 '시크한 매력'
  • 에스파 닝닝 '완벽한 비율'
  • 블링원 클로이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