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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파문한 스피노자를 만나는 일은
당시로선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두 사람은 비밀리에 교류했다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는 현대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변증법을 만든 헤겔조차 “스피노자의 추종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철학의 필수적인 출발점”이라고 했고, 아인슈타인도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에 “나의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고 답했을 정도이다. 스피노자는 만 44세라는 한창 젊은 나이에 폐질환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기독교가 지배하는 17세기 서유럽 사회의 폐해를 목도하면서 과연 전통적인 신이 존재하는지, 인간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번민했다. 전지전능한 신이 만든 당시 유럽 사회의 꼴이 이런 것이냐는 의문 때문이다. 타락한 교회와 국가의 실력자들, 자본가들이 민간 대중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에다, 민간 대중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던 게 당시 유럽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현상은 종교와 더불어 정치·경제적 성공을 이룬 오늘날 대부분의 개발국가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을 쓴 미국의 젊은 철학자 매튜 스튜어트 역시 이런 점에 착안해 고민하고 집필했다.

매튜 스튜어트 지음/석기용 옮김/교양인/2만7000원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매튜 스튜어트 지음/석기용 옮김/교양인/2만7000원

암스테르담의 천재로 통했던 스피노자는 ‘전통적인 신’ 대신 인간 이성이 만든 ‘제대로 된 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모세5경은 사실 인간이 쓴 것이며, 영혼은 육체와 함께 죽고, 신은 물질 덩어리”라고 외쳤다. 당시로선 파격적이다. 지배 계급은 물론, 지배계층에 아부하는 지식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천재의 발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고 위험천만한 철학자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포르투갈계 유대인인 그는 1656년 24세 때 유대공동체에서 파문당하며 가족과 말하거나 식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들에게 그는 신을 부정한 불경한 이단자였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유대인 무신론자로 낙인찍혔다.

이런 스피노자에게 당대 명망 있는 철학자 라이프니츠가 도전한다. 라이프니츠의 사상은 신정(神政)이었다. 30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국 독일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로 전통적인 신을 선택했고, 기독교 국가 건설이 그의 이상이었다. 신을 섬기되 지향하는 방향이 정반대인 당대의 현인 두 사람이 은밀히 만난 것이다. 극과 극은 통하고 천재끼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 같다.

1676년 11월 찬바람이 불던 어느 가을날, 라이프니츠는 헤이그의 운하 길가에 서 있는 작은 벽돌집 2층 다락방에서 근신 중인 스피노자를 만났다. 교회가 파문한 스피노자를 만나는 일은 당시로선 부와 명성이 한꺼번에 끝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만 두 사람은 비밀리에 교류했다.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숨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오랜 시간 토론을 벌였다. 3평 남짓한 좁은 다락방이었지만 방 안은 지적인 기운과 진리 추구의 열정으로 가득 찼다. 두 사람은 팽팽한 논리 대결을 펼쳤다. 잘나가는 궁정 대신이자 미적분을 고안한 수학자였던 라이프니츠와 유대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이단자 스피노자의 토론 주제는 ‘신’이었다.

스피노자는 ‘전통적인 신’은 인류에게서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 차별과 민간 대중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와 억압적인 중세교회 조직의 기본 틀이 ‘전통적인 신’이라고 했다. 그는 전통 신 대신 인간의 이성이 만든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저자는 “당시 스피노자의 철학은 세상을 뒤엎을 만한 무서운 철학이었다. 전통적인 신의 퇴출은 신을 핑계로 자유를 억압해 온 구체제의 전복을 의미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따르면 이성을 지닌 인간이 만든 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경구는 스피노자가 한 말이 아니다.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는 스피노자에게 경건하고 독실한 종교인의 이미지를 부여했지만, 이는 종교개혁의 불을 댕긴 마르틴 루터가 쓴 일기장에 있는 말이다. 이것 역시 전통 교회가 만들어낸 허구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7세기 사회에서 스피노자는 ‘가장 위험하고 과격한 이단자’로 알려져 있었다. 중세 기독교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를 급진 혁명가로 비판하고 배척한다. 스피노자는 이중으로 추방당한 인물이다. “쇠사슬로 묶어놓고 몽둥이질을 해야 마땅한 미치광이 악한”이라는 비난이 그를 따라다녔다. 암살 위협까지 받게 되자 그는 고향 암스테르담을 떠나 헤이그로 숨어들었다. 그런 스피노자를 당대 명망가였던 라이프니츠는 몰래 만나 신을 놓고 담판을 벌인 것이다.
저자는 “신을 둘러싼 두 사람의 논쟁은 유신론과 유물론으로 나뉘는 근대 철학의 시발점이 되었다. 두 사람은 근대적인 사유를 탄생시킨 창시자로 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썼다. 이 책은 두 사람의 철학적 논쟁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상적인 기반과 삶을 조명한 평전이다. 스피노자가 죽은 지 333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품은 신에 대한 의문과 비판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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