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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빈부격차 뛰어넘었던 초기 기독교정신으로 돌아가야”

입력 : 2009-08-05 11:30:24 수정 : 2009-08-05 11:3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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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살림교회 최형묵 목사 보수기독교 향해 쓴소리 “당신이 목사냐”고 대놓고 손가락질을 당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일그러진 기독교 문화를 개혁하는 데 누구보다 목회자의 각성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권력화한 기독교’에 대해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온 최형묵(49) 한국기독교장로회 천안살림교회 목사는 기독교의 새 길을 찾느라 분주하다. 최근엔 ‘힘’에 대한 동경으로 얼룩진 보수 기독교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적 기독교회들의 분투를 소개하는 책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로크미디어)을 펴냈다. 그는 “보수 기독교의 정치적 행보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에게 한국 교회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며 분명 다른 기독교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천안과 서울을 오가며 신학자와 목회자 일을 병행하는 최형묵 목사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30일 서울역에서 이뤄졌다. 그는 “한국 교회들은 ‘불안’이라는 병을 주고 또 약을 줄 뿐 신앙을 통해 삶의 기쁨을 향유하도록 하는 데는 등한시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예배당’ 아닌 ‘성전’은 배타적 군림의 상징

“한국 교회에서는 교회 직분이 대부분 사회적 신분과 병행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교회에서도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거죠. 그 등식관계는 모범적인 선망의 대상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믿음이 좋으면 복받는다는 현세주의적 메시지를 전파합니다. 신앙이 세속의 신분질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성장 지상주의와 함께 권력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힌 보수 기독교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그는 ‘직분’이란 게 예수님 시대에 따로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예수님이 사제였습니까. 12제자가 안수받은 사도였습니까. 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일 뿐입니다.”

그는 본연의 대안공동체로서의 원형을 되찾기 위해 “예배의 모든 요소를 하느님을 향한 인간행위로 ‘격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컨대 예배당을 ‘성전(聖殿)’이라 부르는 것, 예수의 말씀을 반말로 옮긴 성서번역본 등은 배타적 군림의 상징이라는 것. 그는 “설교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깨우치기 위한 길잡이일 뿐”이라면서 “목회자들은 오히려 하느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설교를 듣는 청중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 목사는 신앙의 힘으로 이 땅에 올바른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산 초기 기독교 시절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주문했다. 초기 기독교 시절 서울의 내로라하는 교회들도 천민이 장로가 되고 대접받는 교회가 못마땅해 양반교회를 만들어 옮기던 시절, 반상과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었던 전북 김제 금산교회의 일화는 작금의 한국교회에 귀감이 된다.

“1900년대 초반 주인을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한 머슴이 먼저 장로로 추대되자 주인은 머슴을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보내 목사를 만들었고, 뒤이어 장로가 됐습니다. 전북 김제 금산교회의 고 이자익 목사와 고 조덕삼 장로의 이 이야기는 지금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교회의 재구성, 천안살림교회

한국사회에서 양적 규모로 성공을 거둔 대형교회(1000명 이상)는 2%에 불과하며 60%는 50명 미만의 작은 교회들이다. 규모로만 볼 때 전 세계 10대 교회 중 5개가 한국교회라는 통계도 있다.

최 목사는 “한국에서는 극소수의 대형교회가 표준형처럼 여겨지며 작은 교회들이 규모와 권력을 선망하기 때문에 문제”라면서 “교인들 내부의 소통뿐 아니라 지역사회, 시민단체와 소통하는 공간이 되도록 ‘교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세대 신학과와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앙과 직제 위원,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위원, 계간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최 목사는 천안살림교회에서 이런 신학적 고민들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신도 80여명의 천안살림교회에서는 장로의 임기를 4년으로 제한했고, 지난 2일엔 여성장로를 선출했다.

그는 “특정한 연령대의 남성 목사와 장로 등으로 제한된 교회의 대표권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교회협의체들은 목사와 장로로만 대표권을 구성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상층 정치구조와 달리 교단의 총대를 목사, 청년, 여성 순으로 안배합니다. 교회 안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죠.”

천안살림교회는 평일에는 지역사회 단체들에 문을 개방, 방과후학교, 장애인단체 사무실, 독거노인을 위한 반찬 만드는 공간 등으로 활용되는 열린 공간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기독교 신학은 ‘보이는 교회’(현실의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본연의 하느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의 건강한 관계를 고민해 왔다”면서 “현실의 교회를 하나의 위기 구조로 인식하하는 가운데 보이는 교회를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교회의 기준에 따라 갱신돼야 하는 관계로 봤다”고 했다

물론 교회에 오면 익명성의 의자에 앉아 설교에 파묻히고 싶어하는 신도들의 수동적인 자세는 작은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는 대형교회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자기성찰적인 신앙이 가능할까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리스도교인들의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촉구했다.

“대형교회에서 할렐루야, 아멘 외치며 통성기도, 합심시도를 할 때 진정 내 내면을 움직이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눈물조차 일종의 종교적 카타르시스로 끝나고 말죠. 교회는 세속의 전의를 불태울 에너지를 얻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잘못된 삶을 회심(회개)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글·사진=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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