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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엔 자극제… 이젠 편한 동료예요"

입력 : 2009-03-04 17:32:47 수정 : 2009-03-04 17: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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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로 한 무대 서는 발레계 두 별 김지영·김주원
잘나가는 두 발레리나가 한 무대에 선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 김지영(31)과 국립발레단 김주원(32)이 그 주인공. 이들을 무대로 이끈 작품은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신데렐라’(20∼24일·예술의전당)다. 김지영은 신데렐라로, 김주원은 요정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동안 더블 캐스팅으로 같은 작품을 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두 무용수가 다른 역으로 한 작품에 서기는 9년 만이다. 그동안 김지영은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로 성장했고, 김주원은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여성무용수상을 수상하며 정상을 향해 달려왔다.

한창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는 두 발레리나가 한 호흡으로 일궈내는 무대는 어떨까. ‘종합선물세트’라고 말문을 연 그들은 “좀처럼 보기 힘든 무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비교가 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한 무대에 서는 건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부분.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들은 “과거에는 ‘자극제’였다면 지금은 서로 힘든 부분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동료’”라고 서로를 소개했다.

“발레리나로서 서로 나이도 많이 들고 무용수로 경쟁하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는 김지영의 부연 설명엔 세월이 가져다준 여유가 묻어 있었다.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신데렐라’로 한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 김지영(오른쪽)과 김주원. 이들은 올해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의 진행자로도 무대에 설 계획이다. “몸이 아닌 말로 무언가를 표현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거 같다”며 걱정을 내비친 두 사람은 “그래도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선 뭐든 하겠다”며 금세 환한 웃음을 보였다.
이제원 기자
#무대 위 발레리나

이미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한 김지영, 김주원에게도 이번 작품은 도전이다. 고전을 독특한 해석으로 풀어내는 마이요의 작품은 비틈의 미학을 춤에서뿐 아니라 무대, 의상에까지도 극적으로 드러낸다. 신데렐라는 토슈즈를 벗고 맨발로 무대에 오른다. 발끝을 세우는 데 익숙한 발레리나에게 오히려 발을 바닥에 붙이고 춤을 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발에 여기저기 물집이 잡혔다”는 김지영은 그러나 “음악과 춤이 딱 맞아 제 옷을 입은 것처럼 동작이 물 흐르듯 진행돼 춤추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다”고 싱긋 웃었다.

몸을 쓰는 부분도 다르다. 김주원은 “클래식 발레와는 반대로 긴장을 풀어주면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작품에 없는 새로운 역할을 한다는 게 그 힘듦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신데렐라 엄마 역을 맡은 김주원은 여러 가지 사랑의 유형을 표현한다. “엄마가 아빠와 펼치는 춤은 로맨틱한 남녀의 사랑을 보여드려요. 엄마가 죽고 난 뒤 요정으로 변해 남편과 딸을 지켜내는 모습 속에선 깊은 사랑을 느낄 수가 있죠.”

수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막상 공연 날이 다가오면 긴장되는 건 늘 똑같다. 다만 이제는 무대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다. 김지영은 세밀해졌다는 표현을 빌렸다. “음악이 들려요. 춤이 물 흐르듯 음악에 맞춰 움직이게 된 거죠.” 김주원은 “시각이 넓어졌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보이기 때문에 제 춤에만 몰두하지 않아요. 무대에선 조화를 맞추는 게 더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았어요.”

#무대 밖 발레리나

무대에서 내려온 발레리나의 일상은 어떨까 궁금했다. 김주원은 “다음에 태어나면 절대 몸 쓰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김지영은 “발레리나로 살려면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는 말로 결코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우아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발레리나의 일상은 무대에 서는 그날을 위해 존재한다. ‘완벽하다’고 할 만큼 상체가 빚어내는 선이 아름다운 김주원은 ‘타고난’ 게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목과 팔꿈치 뼈가 유독 도드라져 동작 하나를 할 때마다 각도를 달리하며 부드러워 보일 때까지 연습하고 또 했다. “장점과 단점은 종이 한 장 차이예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단점이 장점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연습을 늘 하죠. 눈 뜰 때 몸이 아프지 않거나 잠들 때 편안하게 잠이 들면 오히려 저한테는 그게 이상한 일이에요.”

7년간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김지영에겐 무대 밖 생활은 ‘인내’였다. 주역 무용수로 성장하기까지 기회는 자신의 바람보다는 훨씬 더 천천히 찾아오는 거 같았다. 더구나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 입단하자마자 생긴 다리 부상은 긴 슬럼프를 안겨줬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극복한 건 아니에요. 발레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무대에 서지 못하자 그게 얼마나 소중한 일이었는지 깨닫게 됐어요. 재활 훈련을 받고 다시 무대에 서서 흘러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내 안의 발레리나

그들은 “무대에서 춤출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 역시 염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무대 위에 설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인생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한 ‘발레’를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부탁했다. 김주원은 “발레는 인생의 리허설”이라고 답했다. “제 안에 있는 모든 게 축적돼서 춤으로 보여진다고 생각해요. 한 작품이 끝났다고 다른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그게 어떤 형태로든 다음 작품에 묻어나요. 그 안에 서른 두 살의 제 삶도 그대로 담겨 있는 거죠. 켜켜이 쌓여서요.”

김지영은 “발레는 엄마 같은 존재”라고 정리했다.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란다. “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더 그렇기도 해요. 때론 밉기도 하지만 가장 잘 위해주는 존재이기도 하잖아요. 가장 힘들 게 하는 것도 발레지만 그래도 끝까지 옆에서 저를 지켜주는 것도 발레더라고요.” 특히 김지영에게 올해는 뜻깊은 해다. 7월 국립발레단 주역 무용수로 복귀하는 그는 네덜란드국립발레단에서는 게스트 주역 무용수로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할 계획이다.

“날개를 달았어요. 엄마처럼 결국은 제가 바라는 바를 들어준 셈이죠.”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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