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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on] 이루마 "언젠가 국악·심포니 곡 만들 터"

입력 : 2008-12-29 22:38:44 수정 : 2008-12-29 22: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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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닷컴] "감미로운 음악이오? 내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죠."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에 '뜻을 이루라'는 의미의 외할아버지가 지어 주신 독특한 이름까지, 아직도 자신을 두고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사람이 많단다. 심지어 군대 간다고 했을 때 ‘외국인이 왜 우리나라 군대에 입대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을 만큼 이국적인 이미지가 풍기는 외모이지만 알고 보면 순수한 한국인이다.

2008년은 이루마(30·사진)에게 누구보다 뜻깊은 한 해였다. 해군 제대를 했고, 결혼 후 첫 딸을 얻었으며 2년 동안 손꼽아 기다리던 전국투어 콘서트를 열였다.

"아직도 제가 연주 음악으로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해요. 앞으로 어떤 곡을 쓰고 싶냐고 묻는다면 답은 뚜렷히 없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음악을 접하고 쓰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무한하죠 . 최근에는 음악 감독으로서 영화나 드라마를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OST 수록곡으로 제 곡이 쓰인 적은 많지만 한 작품을 위해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와 풍경을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다르니까요. 또한 그동안 제 음악은 소품곡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심포니 곡을 쓰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5세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11세에 영국 유학길에 오른 이루마는 중학생 때부터 작곡가의 꿈을 키웠다. "어느 날, 교실에서 피아노를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친구 한명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어요. 지금 연주한 곡명이 무엇이냐며 악보를 구할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알고보니 그는 유명한 작곡가를 아버지로 둔 친구였어요." 이루마는 자신이 직접 쓴 악보를 그에게 건넸고,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어 제대로 작곡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01년 5월 데뷔 앨범 'Love Scence'를 발표한 이루마는 일본 중심의 뉴에이지 음악 시장에서 신선한 충격과 가능성을 보여왔고, 앨범 또한 아시아 5개국에서 발매되었다. 그는 최근 관심을 갖고 있는 OST와 심포니 외에도 국악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예전에 가야금을 하는 분을 만났는데 ‘작곡가가 없다’며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많지 않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어느 외국의 피아니스트가 해금과 같이 연주를 했는데 너무 멋있었다며 이루마 씨는 왜 그런 연주 안하느냐 물으시면서요. 서양 악기와 국악기는 울림도 다르고 음역도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죠. 진정한 국악기의 소리를 살릴 수 있는 그런 음악을 쓰고 싶어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요. 다 때가 있는 거니까 아직은 고민하는 단계에 있어요.”

영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올해 8월 군악대와 해군홍보단으로서 병역 의무를 마친 그는 희노애락이 공존했던 군 생활 이야기에 눈이 반짝였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갔던 군대인 만큼 느낀 점이 더 많다.

“가입소 기간에 훈련을 하면서 일주일 정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요. 일주일 안에 해군을 포기하면 육군으로 빠질 수 있었죠. 그런데 전 이미 해군 간다고 기사화 됐기 때문에 힘들어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조용히 갈껄 그랬나 싶기도 했고.(웃음)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었죠.”

초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이민을 갔던 그는 한국 사회에서 '선후배 문화'에 끼여들 틈이 없어 늘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같은 해군 출신만 봐도 반가움과 든든함이 느껴진다.

“군대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너무도 많아요. 저보다 10살 어린 친구가 ‘귀를 파주겠다며 누워보라’고 하기도 했는데 기분 참 묘하더군요.(웃음) 밖에서 빗자루질 하고 있는데 선임에게 똑바로 안한다고 욕도 듣고…. 사실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게 군대예요. 어려웠던 것들에 대한 부분을 아주 작게 만드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동서 사이가 된 배우 권상우 덕에 요즘에는 처제 부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권상우의) 연예인 같지 않은 털털한 성격에 놀랐다’는 그는 이따끔씩 삼청동 카페 등지에서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지난 28일에 열린 서울 공연에서는 권상우와 손태영 부부가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 내년 봄 출산 예정인 처제 손태영은 한창 태교에 몰두하고 있다고. 손태영의 친언니인 손혜임 씨와 지난해 결혼식을 올린 이루마는 올해 7월 딸을 얻었다. 이름은 '이로운'. 아빠가 지었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엄마가 지은 이름이다.

“결혼을 하면 완성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혼자였을 때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나를 반겨주는 것은 우두커니 서 있는 피아노 한 대였는데 이제는 아내가 있고 옹알대는 딸도 있어요. 일부에서는 음악가는 절대 안정된 환경에서 있으면 안된다고 말을 하죠. 음악이 예전보다 잘 안나오지 않느냐 하는데 솔직히 맞는 말이에요. 예전에는 하루 종일 몇 십 개의 곡을 쓴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때의 음악보다 지금이 음악이 더 깊이가 있고 뜻이 있고 의미가 있어요. 예전에 없었던 깊이가 생긴 것 같네요.”

요즘 23개 도시 전국 투어를 하고 있는 그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뛰어난 무대 매너를 선보이고 있다. 타고난 입담으로 공연을 이끌어가는 그이지만 사실 무대 공포증이 굉장히 심했다고.

“다른 사람의 곡을 연주한다면 저는 무대에 못섰을 겁니다. 내 곡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공연을 너무 많이 해서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아요.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내 방에서 연주를 한다’, ‘저 사람들은 나와 굉장히 친한 사람들이다’ 라는 생각으로 연주를 하죠."

그는 대극장에서 공연을 하더라도 마치 소극장에서 공연하듯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심지어 신청곡까지 받는다. 단조로울 것이라는 피아노 솔로 공연에 대한 편견은 그의 공연에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앵콜 곡이다. 귀에 익숙한 곡이지만 평소에 들을 수 없던 편곡으로 인해 관객의 호응이 최고조에 달한다. 한때는 가수 비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색다르게 편곡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고, 이따금씩 만화 주제가를 아름다운 선율로 선보였다.

공연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함께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공연했을 때다. 그날 따라 태풍이 몰려와 야외 무대의 세트가 떨어지는 등 비상이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에서 반주를 하는 도중 태풍으로 악보가 날라 가고 말았다. 다행히 노래의 뒷부분이 앞부분과 비슷해서 뒷장 악보 한장만 가지고 그는 무사히 반주를 마쳤다. 그런 돌발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 관리하며 연주를 완성하는 모습에 관계자는 물론 관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예전에 콘서트 중, 어떤 남성 분이 갑자기 ‘이루마 씨, 부탁이 있습니다!’하고 무대로 나오시는 거예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프로포즈 곡으로 ‘오솔레미오’(O Sole Mio)를 부르겠다는 겁니다. 굉장히 당황했었죠. 그 분이 그날 오전 마라톤을 완주하고 왔는데 아내 될 사람을 위해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무대까지 오신거였어요. 하필 그때가 공연 마지막 부분이어서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터라 굉장히 난처했죠. 결국 고민하다 그 분이 부탁을 들어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거절안하고 그분에게 기회를 줄 수 있었다는게 다행이구나 싶어요. 내 음악을 통해 저 분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이 뜻 깊었죠. 음악이란 곧 '만남'이니까요."

최근 발표한 6집 앨범 'PNONI'(Piano and I)는 기존 앨범과 사뭇 다르다. 과거의 앨범에는 곡에 대한 설명을 수필 형식으로 수록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앨범 명처럼 ‘피아노와 나’라는 의미를 담아 오로지 음악과 곡의 제목만 담겨 있다.

“대부분 병장 때 쓴 곡이에요.(웃음) 아무래도 그리움에 대한 것들로 인해 스스로 밝아지려고 노력했던 때였어요. 피아노 솔로로 다시 간 이유도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있어 최대한 뭔가를 발휘해 보자, 싶어서였죠. 이번 앨범은 그동안 피아노 곡들 중에서 가장 신중하고 고민을 많이 한 앨범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죠.”

그는 스스로 ‘매우 부족한 사람’이고 당당히 말한다. 어쩌면 그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그의 음악에 그대로 녹아 순수하고 따뜻한 선율을 빚어내는지 모른다. 

“예전에 들렀던 한 병원에 피아노가 있더라구요. 누구나 치고 싶으면 악보를 가져와서 칠 수 있게끔 되어 있었죠. 신기하다 싶었는데 그때 하얀색 가운을 입은 의사 한분이 악보를 들고 걸어가 쇼팽의 곡을 연주하더군요. 완벽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내가 들었던 연주 중에서 가장 멋있었어요. 정말 즐기고 있었거든요. 의식하지 않은 연주, 이게 진짜 연주구나 느꼈죠.”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사진 황재원 기자 jwstyle@segye.com  / 장소 삼일로 창고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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