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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길에서 만난 사람] 중국 쓰촨성 쑹판, 자연과 인간과 말…하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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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9-26 10:11:11 수정 : 2008-09-26 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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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의 목적지인 설산이 저 멀리서 보인다.

여행을 하다 보면 원래 갖고 있던 선입견이 없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없던 선입견이 생기기도 한다. 필자에게는 이스라엘인이 그랬다.

이스라엘의 젊은 여행자들은 시끄럽고 무례하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뿐만 아니라 물건값 잘 깎기로도 세계 최고다. 여행자들의 천국인 태국 방콕 카오산에서 물건이나 표를 살 때 여행자들의 국적을 묻고 가격을 말해 주던 때가 있었다. 옷을 살 때 “어느 나라 사람이죠?”라고 묻는 식이다. 대표적인 경우로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행 티켓을 들 수 있는데, 태국 여행사들은 부가수익을 얻어낼 수 없는 여행자들에게는 표를 비싸게 팔았다.

부가수익을 내는 곳은 점심식사를 위해 들르는 식당, 비자 수수료를 받는 국경, 시엠릿(앙코르 와트가 있는 마을)의 숙소 등을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인은 식당에서 밥을 사 먹는 대신 미리 준비해 온 바나나를 먹고, 비자는 방콕에서 미리 만들어 오고, 숙소는 여행사와 연계되지 않은 저렴한 곳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스라엘인에게 파는 티켓이 가장 비쌌다. 물건을 살 때도 너무 깎는 탓에 태국 상인들의 괘씸죄에 걸려 카오산 일대의 모든 상점에 ‘이스라엘 가격’이 따로 책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스라엘인은 물건 값을 깎는 것도 깎는 것이지만, 현지인과 다른 여행자들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과도하게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통성명을 하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입니다”라고 대답하면, 아무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흠칫 긴장을 하게 된다.

중국 여행 중에 쓰촨성(四川省)에 위치한 작은 도시, 쑹판(松潘)에서 감기로 며칠 쉬고 있었을 때다. 쑹판은 딱히 볼거리가 있는 마을은 아니지만 말 트레킹의 출발지로 여행자들에게 유명한 곳이다. 과거에는 티베트와 중국을 나누는 국경도시였으며, 현재도 티베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말 트레킹 출발자들의 모습만 보다 감기가 거의 나아갈 때쯤 만난 한국 여학생 윤영과 함께 말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트레킹 멤버는 벨기에 남자 2명, 중국계 독일 여자 레이, 이스라엘 남자 요나단 그리고 우리란다.

트레킹은 일정 시간 한 팀을 이뤄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 서로 배려해 주지 않고 자기 주장만 하는 사람이 있으면 트레킹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트레킹의 ‘매너남’ 요나단(가운데)과 함께 한 윤영(오른쪽)과 필자.


다른 그룹들은 모두 출발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만 그대로 남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두 사람이 아직 안 왔단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어오는 저쪽의 두 남자. 이 중 선글라스를 낀 금발머리는 ‘난 잠을 많이 자야 하는 체질‘이라며 잠을 자느라고 늦었단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하지 않고 웃기까지 하는데 어이가 없다.

얌전히 말을 타고, 말 얼굴만큼이나 긴 얼굴을 가진 요나단은 조용하기만 하다. 처음엔 소문이 자자한 이스라엘 여행자의 모습을 볼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다. 여행 내내 동행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건 ‘벨기에 왕자’라는 별명을 얻은 브루노와 ‘그의 하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링이었다.

◇트레킹 길에서 만난 귀여운 중국 소녀들.


요나단은 트레킹 내내 현지 사람과 우리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트레킹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필자에게 하나뿐인 방수점퍼와 양말을 빌려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한 선입견에 긴장감을 가지고 요나단을 대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트레킹을 끝나고 함께 청두(成都)로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요나단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도 알아, 우리가 무례하다는 걸. 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젊은 남자와 여자는 모두 군대를 가야 해.”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군대생활을 하니?” “아니, 여자들은 사무실에서 일해.” “하지만 복무 기간도 길고, 아랍인들과 대치하고 있어 항상 긴장상태로 지내야 하지. 그러다가 제대를 하게 되면 국가에서 어느 정도 돈을 주는데 큰돈은 아니야. 대부분은 대학교 학비에 충당해. 나머지들은 나처럼 여행을 떠나는 거지. 한정된 돈에 최대한 오래 여행을 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끼고 저렴한 곳을 찾게 되는 거지”

“그래서 전 세계의 물가 싼 나라와 도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은 거구나.” “우리는 예로부터 상인의 후예이기도 하지만, 없는 돈에 오래 여행을 하고 싶으니 더 악착같이 깎을 수밖에 없어. 그러니 그런 과정에서 불쾌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지. 또 군대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또래 친구들이 모이면 술을 먹고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대마초나 마리화나 같은 약물을 복용하기도 하는 거야.”

요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스라엘인의 행태가 조금은 이해가 갔고 한편으론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인종, 종교의 갈등으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스라엘과 이념 갈등으로 북한과 휴전 상태인 한국의 상황은 많이 닮았다. 하지만 같은 말을 쓰는 동족 간의 대치 상황이니 우리가 더 가슴 아프다. 병역 의무로 꽃다운 나이에 군대에 가야 하는 한국 젊은이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까. 또,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취업 준비에 쉴 시간도 없이 부랴부랴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은 이스라엘인보다 더 안쓰럽게 느껴진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아시아나 항공과 중국 국제항공에 청두 직항 노선이 있다. 인천공항에서 4시간 걸린다. 신청부터 발행까지 3박4일 걸리는 중국 비자 수수료는 3만5000원. 쑹판은 청두의 신남문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로 9시간이 걸린다. 버스요금은 45∼50위안(1위안=약 178원) 정도다. 말 트레킹은 1박2일, 2박3일 등으로 원하는 일정을 선택할 수 있는데 가장 많이 선택하는 일정은 3박4일이다. 요금은 하루에 100위안. 숙소는 버스터미널과 주요 도로 사이에 이어져 있는데, 도미토리는 20위안 정도. 식사 요금은 중국식 4∼10위안, 서양식은 좀 더 비싸다. 한국 식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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