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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투혼… 감동 주는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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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8-20 20:15:37 수정 : 2008-08-20 20: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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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조건 딛고 ‘인간승리’… 金보다 더욱 멋져

女카누 이순자·사이클 이민혜 등 ‘당당한 미소’
◇이민혜                                  ◇이순자
‘꼴찌에게 갈채를.’

베이징올림픽 스포트라이트는 1등을 비추게 마련이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 부당한 관습과 편견,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꼴찌들도 투혼만큼은 금메달감이다.

이번 대회 여자 카누에서 사상 처음으로 자력 출전한 이순자. 그는 지난 19일 1인승(K-1) 500m 예선에서 마지막으로 들어왔으나 어려운 여건을 딛고 출전한 일만 해도 아낌없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순자는 베이징에 도착해 경기장 출입이 가능한 AD카드가 배정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고, 배는 비용 문제 탓에 현지에서 부랴부랴 공수했다. 게다가 헝가리인 코치는 통역이 없어 의사소통이 불편했고 호흡을 맞춘 기간도 짧았다. 마음을 터놓고 하소연할 상대도 없었다. 식사부터 배를 빌려 고치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이날 여자육상 200m 예선에 출전한 사미아 유수프 오마르(소말리아)는 32초16으로 경기를 마쳤다. 예선을 뛴 46명 중 최하위. 30초대 기록은 오마르가 유일했다. 그러나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깡마른 몸매에 헐렁한 반팔 티셔츠 차림의 그에게 관중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17년에 걸친 내전으로 변변한 트랙 하나 찾기 힘든 소말리아에서 ‘여성은 짧은 바지를 입는 올림픽에 나가서는 안 된다’는 이슬람 민병대의 핍박을 이겨낸 그의 용기를 높이 산 까닭이다. 오마르는 “소말리아 사람들은 스포츠를 하는 여자를 타락한 죄인으로 낙인찍는다. ‘육상을 하면 평생 결혼은 못 할 줄 알아라’는 협박도 잇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마르는 민병대가 집 앞을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를 뚫고 달리고 또 달려 베이징에 왔다.

지난 18일 다이빙 남자 3m 스프링보드 예선에 나선 손성철은 첫 올림픽 출전에 긴장한 나머지 꼴찌로 처졌다. 다이빙대가 없는 서울 태릉선수촌을 떠나 충북 청주에서 홀로 훈련했던 그는 베이징에서도 긴장을 풀어줄 동료가 없었다. 경기장에서도 그를 응원하는 이는 이종희 코치뿐이었다. 그러나 다이빙 불모지 한국의 유일한 대표로 경기에 나선 사실만으로도 그는 당당한 승자다.

이날 사이클 여자 포인트 경기에 출전한 이민혜(23)도 최하위에 머물렀다. 경북 영주의 경륜훈련장에서 더부살이하며 ‘눈칫밥’ 훈련을 해야 했던 그는 “런던올림픽에서는 사이클 사상 첫 메달을 꼭 따내겠다”고 말했다. 그의 올림픽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그는 더 이상 꼴찌가 아니다.

지난 15일 육상 남자 100m 예선에 출전한 아프가니스탄의 마수드 아지지. 카불의 콘크리트 운동장에서 조깅화를 신고 연습했던 그는 이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면서 달렸으나 꼴찌를 벗어날 수 없었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트랙을 돌아보던 아지지는 “조국에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여건만 갖춰지면 올림픽 메달 획득도 가능할 것”이라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앞서 아프가니스탄의 로비나 무키마이야르도 부르카(머리와 얼굴을 가리고 눈만 보이게 한 옷)를 걸치고 여자 육상 100m에 도전했으나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여성의 활동을 억압하는 조국을 떠나 그는 베이징의 트랙에서 여성차별이란 적수를 제치고 힘껏 달렸다.

사이클 남자 개인도로의 박성백, 승마 마장마술의 최준상은 나란히 꼴찌에 머물렀으나 포기의 유혹을 이겨내고 불모지 한국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고, 역도 남자 69㎏급의 이배영은 다리에 쥐가 났는데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는 투혼을 발휘, 13억 중국인을 감동시켰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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