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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토닥토닥] 돌볼 사람 없는 사춘기 소녀의 방황, ‘조리사 자격증’ 목표 통해 희망찾기

입력 : 2013-04-21 23:47:28 수정 : 2013-04-21 23: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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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선생님, 상담을 하고 싶은데요.”

희망을 찾았으면 하는 여운이 담긴 목소리로 지난해 3월 소영(가명·당시 중3)이가 나를 찾아왔다. 순간 소영이가 교육복지 대상학생이라는 것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영이의 얼굴에서 다급함이 느껴져 난 식사를 미루고 상담 테이블에 앉았다.

소영이는 “나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불필요한 존재 같다”고 했다.

소영이의 어머니는 소영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셔서 소영이를 돌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영이는 컴퓨터에 빠졌고, 생활은 점점 질서를 잃어갔다. 밥 먹듯이 지각을 했고, 수업시간에는 모자란 잠을 잤다. 어느새 학교 부적응 학생이 돼가고 있었다.

진로진학상담교사인 나는 소영이가 한 가지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소영이에게 근처 수도요리학원에서 조리사자격증을 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 학원은 서울 중부교육지원청 관내 협력업체로 1회성 체험 프로그램을 할 때 이용했는데 알아보니 자격증 코스 같은 장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다.

요리를 배우는 김에 특성화고 조리과에도 도전해보자고 제안했다. 소영이는 ‘내신도 좋지 않은데 가능하겠느냐’고 반신반의했지만 한번 해보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돌아갔다.

한 달 뒤 다시 만난 소영이의 표정은 다행히 밝아져 있었다. 조리 배우는 것을 즐거워했고, 촉망받는 조리사가 되어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겠다는 기특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격증을 따기란 쉽지 않았다. 이론과 실습 모두 부족했고, 뒤처진 성적을 끌어올려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소영이는 자신이 넘어야 할 산이 이중, 삼중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었다.

희망 끝에 찾아오는 좌절은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 소영이가 실망하지 않도록 “산적한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반복해 얘기했다.

소영이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조리사 자격증 획득도, 특성화고 조리과 진학도 하지 못했다. 소영이가 상처받지 않았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이런 기회를 가진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며 되레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지난달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조리사자격증을 땄다는 것이다. 공부도 아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목소리에서 당찬 자신감이 묻어났다.

오늘도 난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과 상담을 한다. 소영이처럼 건강한 진로를 개척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박후서 <서울 대신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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