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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하는 폭력, 탈출구가 없다] "머리 치며 욕설… 쉬는 날 수간호사 아기 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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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2-21 23:33:31 수정 : 2012-02-21 23: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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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서 왕따 당하는 간호사의 일기 2012년 2월 ○○일 날씨 흐림.

오늘 오전에도 태움(간호사들 용어로 ‘갈굼’)을 당했다. 린넨실(환자복 보관 창고)에 또 불려갔다. 선배 3명이 떡 버티고 있었다. “목소리가 작아 대답이 안 들린다”고 꾸중을 들었다. 어제는 목소리가 커서 시끄럽다고 혼났는데. 10분은 넘게 서 있었다. “너 같은 게…”라며 머리를 툭툭 치고 욕도 했다. 수액팩은 안 던져서 다행이다.

사실 오늘은 오프(쉬는 날)였다. 4일 연속 밤근무(오후 9시∼오전 8시) 후 처음으로 받은 오프다. 수간호사는 듀티(근무일정표)를 이상하게 짠 뒤 ‘내가 요청한 것’이라고 서명을 강요했다. 오프에도 출근해 13시간째 밥도 못 먹고 온갖 일을 떠맡았다. 지난 오프 때는 수간호사가 외출한 동안 집에 가서 아기를 돌봐줬다. 다음 오프는 병원 의무교육에도 참석해야 한다.

생각해 보니 연말 장기자랑 때부터다. 수간호사 지시로 신규 간호사들이 의사들 앞에서 춤을 췄다. 하기 싫었지만 “우리도 했다”는 선배들의 말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관행이란다. 이어진 술자리에서 수간호사는 각자 의사 옆에 앉아 술을 따를 것을 강요했다. 옆자리의 한 의사가 “개업하면 너 데려갈게. 돈 더 많이 주고…”하면서 내 어깨에 팔을 두르려고 했다. 더는 참지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신년 하례 때도 비슷했다. 왜 의사와 간호사 모두 진료과장 집에 몰려가 그집 식구에게까지 인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그때부터 모두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오후에 한 레지던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 병동 왜 이래? 어이없어.” 진료 준비가 부족하다며 20년 경력의 수간호사에게 막말을 내뱉었다. 뻣뻣하던 수간호사가 절절매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퇴근시간이면 늘 다른 간호사들의 휴대전화가 잇따라 울렸다. “마치고 뭐 하니, 식사는 누구랑 하니” 등 일정을 묻는 수간호사 전화다. 자기만 빼고 간호사들이 모일까봐 항상 일정을 점검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런 전화도 내게만 ‘뚝’ 끊어졌다. 병원을 나서려는 찰나,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수간호사가 좌천됐단다. 본교 출신도 아니고, ‘백’도 없어 진급하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은 파다했었다. 새로운 수간호사가 오겠지만 병원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태움당하는 내 처지도 변하지 않겠지. 내일도 출근하기가 두렵다.

서지희 기자 g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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