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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초대석] 이기수 양형위원장 “성범죄 양형 너무 관대한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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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10-12 01:43:38 수정 : 2011-10-12 01: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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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소수자 박탈감 더 컸을 것”
영화 ‘도가니’ 보면서 폐해 실감…관행 탈피해 미흡한 부분 개선 시급
이기수 양형위원장은 상법 전문가다. 30대 때 독일에서 6년간 유학했고, 현재 모교인 고려대에서 상법, 공정거래법, 국제거래법, 지식재산권법 등 강좌를 맡고 있다. 역대로 대법관 출신이 맡던 양형위원장을 상법학자가 맡게 된 배경은 뭘까. 그는 “학자로서 전공도 다르지만 법원, 검찰, 변호사, 교수, 시민단체 등 각계의 상충된 의견을 적절히 조정·중재하며 회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위원장의 역할이라는 점에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천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양형위원 12명 중 법관(4명)이 많다 보니 편향적으로 움직인다는 일부 비판도 고려됐다고 덧붙였다.

3기 양형위가 출범한 지 6개월로 접어들면서 남은 1년6개월 동안 8개 범죄군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영화 ‘도가니’로 빚어진 논란과 이로 인해 확인된 국민 법 감정을 양형기준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가장 급한 책무가 됐다.

지난 6일 대법원 15층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영화를 보고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양형에 문제의식을 강하게 느꼈다”며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장애인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양형기준은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는 24일 임시회의와 11월 말 공청회를 열고, 내년 1월말까지 시민 1000∼2000명과 형사 실무가 등 전문가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간극’을 해결하자는 취지의 하나다.

―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화학교 사건 양형 논란을 어떻게 보나.

“영화를 보는 내내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겪는 박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피해 장애아동들이 가슴으로 외치는 절규가 느껴져 가슴이 아팠다. 사실 영화와 실제 사건의 내용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도 충격이었다. ‘국민이 법원을 우습게 여기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영화가 과장되거나 잘못 표현된 부분이 많고, 당시 친고죄 규정 등 여러 제약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해도 법원의 성범죄 양형 관행에 문제는 없었는지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

― 구체적인 사건 상황과 양형위가 진행하는 일은 어떤 게 있나.

“광주 인화학교 사건은 2005년 이전에 발생해 2006∼2008년 판결이 난 사건이다. 개정 성폭법(2010년 4월15일 시행)과 양형기준 시행(2009년 7월1일 시행) 이전의 사건이다. 1기 양형위는 ‘과거 양형이 관대했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종래의 선고형량을 상향 조정했다. 2기는 ‘학교, 유치원 등 특별보호장소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가중영역 형량을 권고하는 등 내용의 수정 양형기준을 마련해 지난해 7월15일부터 시행했다. 심신미약 장애 아동·청소년 간음 등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한 개정 아동·청소년보호법도 내년 3월 시행된다. 법원 양형이 관대하다는 국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임시회와 공청회를 개최하고, 대국민 설문조사를 기획하는 등 양형기준 재검토 및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 성범죄 양형기준 재설정 작업의 핵심은 뭔가.

“취약 아동에 대한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더 높일지 여부가 관건이다. 1·2기 때에는 없었던 자문위도 설치할 것이다. 법조계 인사는 최소화하고 학계, 교육계, 언론계, 노동계 등 각계인사 10∼20명으로 구성할 생각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양형을 높일지 결정하게 된다. 법률 개정으로 해결할 문제가 도출되면 입법부에 건의할 생각이다.”

― 성범죄 양형기준 시행 후 집행유예 선고율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있는데.

“성범죄 양형기준 수정 이후의 대상사건(2010년 7월 15일 이후 기소돼 지난해까지 선고된 사건)의 평균 형량은 증가했으나, 실형 선고율은 다소 감소했다. 이는 불과 3∼4개월 동안 선고된 판결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라서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후에도 동일한 결과라면, 그 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작업을 실시하겠다. 성범죄를 포함해 ‘법관에 너무 많은 재량권이 부여된다’는 지적을 받는 집행유예 기준의 개선방안에 대해서는 연구·검토하고 있다.”

― 양형기준을 보면 성범죄가 살인죄만큼 중하게 처벌된다. 2009년 ‘조두순 사건’ 이후 성범죄 형량이 계속 상향되는 경향이 있는데.

“나라마다 법체계 및 문화가 달라 정량 비교는 힘들지만, 대체로 유럽 각국은 우리나라에 비해 성범죄에 대한 법정형 및 처벌 정도가 낮은데 비해 미국은 처벌 정도가 높다. 현행 성범죄 양형기준이 일률적으로 높거나 낮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셈이다. 또 살인범죄는 형태가 매우 광범위해 법정형의 폭이 불가피하게 넓을 수밖에 없는데, 성범죄는 상대적으로 형태가 덜 다양해 법정형의 하한이 높다. 두 범죄를 단순비교해 경중을 평가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건전한 상식과 이성에 기초해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여론이라면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

― 3기 양형위는 2013년까지 8개 범죄군에 대한 양형기준을 마련할 계획인데, 진척도는.

“양형기준안 공청회를 2차례 개최한다. 1차로 교통, 폭력, 금융·경제, 지식재산권 범죄를, 2차에서는 방화, 공갈, 선거, 조세범죄를 다룬다. 현재 전문위원단을 중심으로 1차 공청회 대상 4개 범죄군의 양형기준안 작성 작업을 상당히 진행했고, 연말까지 기준안을 의결해 내년 초 공청회 등 절차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나머지 2차 범죄군은 내년 상반기 검토를 시작한다.”

―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어 선거범죄 양형기준에 관심이 많다.

“선거범죄는 유권자의 의사를 왜곡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을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엄정한 양형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다수 유권자의 선택에 의한 당선의 효력을 법원의 판결에 의해 무효화할 수 있는 측면에서 신중한 양형이 요구되기도 한다. 양형위는 각계각층의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고, 선거일 직전에 변경되는 공직선거법의 개정 내용도 반영할 방침이다. 당선 무효형의 기준이 되는 벌금액을 현행 1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으로 알고 있다. 선거범죄 행위가 당선을 무효로 할 정도로 중한 것인지 여부가 주요 판단기준이기 때문에 벌금액을 높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 선거사범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은.

“군에서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지냈다. 당시 ‘커닝’은 기만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불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선거의 경우도 국민의 정당한 의사가 반영돼야지 그렇지 못한 행위는 벌을 받아야 한다. 사회가 정화되고 선진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꼭 고쳐야 하는 게 선거범죄라고 생각한다.”

― 앞서 1·2기가 만든 양형기준 중 뇌물죄 양형기준이 가장 안 지켜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유와 대책은.

“1기 양형위가 뇌물범죄에 관해 ‘종래의 양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지적을 반영해 규범적 관점에서 형량을 상향조정해 양형기준을 설정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양형기준이 형사재판 실무에 정착되면, 뇌물범죄의 양형기준 준수율도 비슷한 수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 양형기준은 판사들에게 ‘권고’ 수준의 효력이어서 국회에서 이를 강제하는 ‘양형기준법’ 제정도 추진했는데.

“양형기준이 권고적 효력이 있지만 법관 대부분이 이를 존중해 따르고 있다. 실제 적용대상 사건의 판결 중 90%가 양형기준 권고 형량을 준수했다. 만일 양형기준을 강제하면 국회 입법권을 양형위에 위임하는 결과가 된다. 결론적으로 양형기준에 의해 재판을 받게 돼 헌법이 규정한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 현 단계에서 강제적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 양형위를 국회나 청와대 산하에 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양형위는 각종 자료 수집, 의견 교환 등 각급 법원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해야 합리적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만약 입법부나 행정부 내에 두면 양형 실무와 동떨어진 불합리한 기준이 만들어질 위험이 커진다. 또 입법부나 행정부와 비교해 봐도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관이 사법부라 생각한다.”

― 판사, 검사, 변호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양형위를 6개월가량 이끌어 본 소감은.

“다양한 배경과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회의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오히려 바람직하다. 위원들 모두 개인적 감정이나 직역 이기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인 주장을 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대담 = 채희창 사회부장

정리=정재영 기자, 사진=남제현 기자

 

이기수 양형위원장 약력

●경남 하동(66) ●동아고,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상법 석사 ●독일 에버하르트칼스대 대학원 상법 박사, 일본 와세다·메이지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명예법학박사 ●고려대 총장 ●한국법학교수회, 사립대총장협의회,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한일법학회 회장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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