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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사업 끝없는 도전… ‘50대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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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3-26 09:37:53 수정 : 2009-03-26 09: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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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사이버대학 ‘장수생’ 정민호씨
◇한양사이버대학을 7년째 다니는 ‘장수생’인 정민호씨는 젊은이들과 교류하시 위해 가끔 술자리 갖는 게 낙이라고 한다. 젊은 동료 학생들과의 만남을 통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간 제약 없고 언제, 어디에서든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평생학습을 통해 얻은 지식을 기업 경영에 접목하는 게 경영의 노하우죠.”

한양사이버대학 경영학부 국제경영 3학년에 재학 중인 정민호(50)씨는 ‘장수생’이다. 2002년 한양사이버대학이 개교하자 제1회 입학한 정씨는 휴학과 복학을 되풀이하면서도 묵묵히 배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25일 만난 정씨는 “평생 공부할 것이라서 졸업과 학위가 급할 게 없다. 사이버대학원이 출범하면 거기에 진학할 것이니 그때 대학을 졸업해도 늦지 않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정씨의 이력은 화려하면서도 파란만장하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카페 창업자’, ‘60초 만에 주식 상장으로 수십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사람’, ‘TV정부 전도사’ 등 다양하다. 좌절과 성공을 반복한 그의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꼬리표들이다.

◆세계 최초 인터넷카페 창업=무역업을 하던 정씨는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을 접한 뒤 충격받았다고 한다. 인터넷이란 용어가 생기기 전 ‘네트워크’로 세계가 연결된다는 생각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그는 “93년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인터넷 상용화’ 계획을 발표했어요. 국내에서도 조만간 인터넷 사업이 번창할 것으로 예상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정씨는 급한 마음에 무역업을 접고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4년 3월 세계 최초의 인터넷 카페인 ‘비즈니스네트워크클럽’을 서울 서초동 법원 앞에 개업했다. 법원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차를 팔며 인터넷도 사용하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는 영국에서 시작된 인터넷 카페인 ‘사이베리아’보다 6개월가량 빠른 것이었다. 35억원을 들여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간 게 실패 원인이었다. 인터넷 향유층 부족으로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하루 매출이 3만원에 불과할 때도 있었으니 임대료를 내기에도 벅찼던 것이다.

정씨는 “멀쩡한 무역업을 접고 생소한 사업을 한다는 말에 아내는 이혼하자고 했고, 형제들도 ‘미쳤다’고 비난했다”며 “하지만 인터넷의 가능성은 무한하며 시장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게 소득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분에 30억원의 대박을 터뜨리다=심기일전한 정씨는 97년 1월 ‘골드아이’라는 게임업체를 창업했다. 그는 게임을 광고와 접목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슬롯머신 게임에 의류, 화장품, 외제차 등을 내걸었고 무료로 이용하도록 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한게임’ 이전의 고스톱과 포커 게임도 개발했다. 인터넷 게임의 ‘원조’인 셈이다.

‘골드아이’가 정상 궤도에 진입하자 정씨는 주식 공모를 시도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정씨는 “저 자신도 반신반의했는데 주식 공모 시작 1분 만에 30억원에 달하는 주식 공모가 매진돼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행성 게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정부 규제의 칼날은 ‘골드아이’로 향했다. 경품지급 한도가 100만원이었던 당시 규정으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이 업체를 ‘사행성게임 1호’로 지목했고, 결국 게임솔루션 전체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TV 전자정부 전도사가 되다=‘골드아이’가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다른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집마다 우편번호가 있는 것처럼 메일주소를 할당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TV와 컴퓨터 융합을 통해 집에서 쇼핑하고 각종 청구서를 받아볼 수 있는 ‘홈메일’ 솔루션 개발에 이르렀다. 이는 참여정부의 ‘TV 전자정부’ 초석이 됐다.

정씨는 인터넷 활성화의 선구자로 자임하면서 돈보다 사회 기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인터넷 요금이 종량제였기 때문에 요금이 싼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작업했어요. 매일 밤을 새우니 주변에서 기인이라고 했죠”라고 말했다.

중앙정부를 비롯한 강남구청, 지방정부 시연을 통해 그가 개발한 홈메일의 효율성은 각광받았고, 국회에서 전자정부법이 통과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벤처사업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창해 옥션 이금영 회장과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 등 벤처기업인 60여명을 모아 ‘벤처로터리클럽’을 만들어 회장으로 활동했다.

◆배움의 길로 들어서다=인터넷 사업을 하면서 정씨는 ‘젊은이들과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기술혁신이 빠른 인터넷의 특성상 젊은 층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목말랐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서 젊은이들의 안으로 들어가서 나이를 떠나 배우자고 결심했어요”라고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정씨는 2002년 한양사이버대학이 문을 열자 제1회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이때부터 ‘사이버대학 전도사’가 됐다. 아내를 설득해 같이 입학하고 두 딸에게도 입학을 권유해 지금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정씨는 “나이를 떠나 배우는 게 최고 자산이다. 딸들과 같이 소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청년들과 교류하고 소주 한 잔 마시는 게 낙”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보다 앞선’ 창의적인 사고를 사이버대학의 공으로 돌렸다. 정씨는 “프레젠테이션 작성법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마케팅 및 광고홍보 등 정말 배울 게 많다”며 “학습을 통해 얻은 것을 경영기법에 접목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사이버대학은 학위가 아닌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이 중요하다”며 “향후 대학은 캠퍼스대학보다 사이버대학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 배가 고프다=‘젊게 사는’ 그의 도전은 그칠 줄 모른다.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교육시장이 개방될 것을 겨냥해 지난해 12월 필리핀의 4년제 정규대학을 인수했다. 교육개방이 되면 외국의 사이버대학들이 한국에 상륙할 것이고, 이 대응으로 필리핀 대학을 인수한 것이다. 사이버대학에서 운영하는 커리큘럼을 공부하면서 필리핀대학과 국내 대학의 학점교류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에 안주하는 네이버, 다음 등 거대 포털사이트 회사들에도 도전장을 내민다는 계획이다. 포털들이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변신에 주저한다는 판단에서다. 정씨는 “진화하지 않는 IT 기술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의 명성을 저해할 뿐”이라며 “포털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경쟁력 있는 회사를 세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약 력

●1959년 서울 출생

●1994년 4월 세계 최초 인터넷 카페 비즈니스네트워크클럽 오픈

●1 998년 게임개발(슬롯머신, 포커, 고스톱 등) 무료 서비스 개시

●1999년 주식회사 골드인터넷 법인 설립 대표이사

●2000년 전자정부 솔루션 개발(T-Gov)

●2000년 4월 주식공모 최단시간 60초 완료(유상증자 포함 30억원)

●2001년 주식회사 홈메일 법인 설립 대표이사

●〃 국제로터리 벤처로터리클럽 창립 회장

●2002년 국제로터리클럽 사이버로터리클럽 창립

●2004년 한솔교육 브레인스쿨 교육원 설립

●2008년 필리핀 단과대학 인수를 위한 MOU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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